안녕, 사탕수수! :: THERE
AROUND, Decemb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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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사탕수수!
안녕, 사탕수수! Xin Chao, Muoc Mia!
태풍이 지나는 자리
죽은 왕들의 땅
일주일 동안의 사치
가장 선명한 기억들
말로와 나는 아주 오랜 친구다. 여행을 떠나온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 우리는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도착했다. 단지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돈을 세는 방법이나 글자를 발음하는 법, 사람들의 생김새 같은 것들 말이다. 말로는 걸어서 국경을 넘는 건 처음이라며 조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여서 인사를 제대로 안 하면 입국이 안될 수도 있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말로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자신의 순서가 됐을 때 말로는 환하게 웃으며 베트남 관리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Nuoc mia, mac qua!(사탕수수 주스, 너무 비싸요!)”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
수상한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머지않아 비가 내렸다. TV에선 태풍을 알리는 속보를 내보냈다. 도로는 침수되었고, 도시의 작은 짐승들은 좀 더 어두운 곳을 찾아서 바닥을 기어 다녔다. 나름 호텔이라고 이름 붙여진(요금은 게스트하우스와 차이가 없는)우리의 숙소에도 여지없이 전기가 끊겼다. 헐거운 창틈으로는 비가샜다. 프런트 직원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들 역시 힘겨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오늘 별 계획도 없었잖아.” 말로가 말했다. 그는 배가 고프다며 방으로 올라갔고,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로비에 남았다. 그리고 겨우 연결된 친구와 여긴 며칠째 비가 그치질 않는다는 이야기만 하다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거기에는 재미있는 일 좀 없어? 그런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전화가 연결되자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요금 때문에 머리가 하얘졌던 거였다. 나는 거의 하루 숙박비에 달하는 요금을 내면서 “젠장 드럽게 비싸네.”라고 한국말로 말해버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프런트 직원의 뒤편으로는 여전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말로는 침대에 누워 식빵에 땅콩잼을 발라먹고 있었다. 빵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진 침대 위로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며 뭐가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넌 뭐가 그렇게 신났어?” 말로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손가락에 묻은 땅콩잼만 빨아먹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손바닥만 한 퍼즐책 하나를 던지고는 다시 침대로 뛰어들었다. “붙어.” 펜을 꺼내며 말로가 말했다. “저녁 내기야. 내가 이기면 분짜Bun Cha(하노이Hanoi에서 특히 유명한 음식으로 숯불 돼지갈비와 가느다란 면, 각종 채소를 새콤달콤한 느억맘 소스에 담가먹는 요리) 를 먹겠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네모 칸에 숫자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분짜의 가격은 일 인분에 3만 동(한화 1,500원 정도) 내외로 결코 비싼 편은 아니지만 당시 우리는 10달러만 가지고 하루를 생활하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내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훼방을 놓으려 큰 소리로 서로의 별명을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퍼즐책과 씨름한 뒤에는 반쯤 탈진한 상태로 각자의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런 다음 지금 가장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나열해보기로 했다. 나는 냉면을 말했고 말로는 망고주스라고 대답했다. 내가 얼룩말을 말하자 말로는 미어캣을 말했다. 나의 검은색 MP3플레이어와 말로의 파우치, 주성치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뭐 그런 것들. “비가 언제 그칠까.” 말로가 잠에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창밖 은 여전했다. 비는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았고, 어쩌면 우리는 여행 중 최악의 날을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꼼짝없이 또 하루를 그냥 보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의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천천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싸구려 카펫이 깔린 불 꺼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대신 하얗고 두꺼운 수건 두 장이 바닥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수건 사이에는 가느다란 양초 세 개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래, 곧 날이 저물고 밤이 오면 촛불이 필요할 테지.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게 익숙한 일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로를 보았고, 그는 아주 작은 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잠들어 있었다.
여전히 도시의 많은 이들이 왕의 무덤으로 밥을 벌었다. 결과적으로 이 땅의 왕들은 죽어서도 통치를 멈추지 않은 셈이었다. 우리는 후에Hue라는 오래된 도시 곳곳에 숨겨진 무덤을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빌렸다. “설마 오늘도 비가 오는건 아니겠지?” 그러자 말없이 바나나를 씹던 말로가 검지에 침을 묻히더니 공기를 느끼는 시늉을 했다. 무슨 주문 같은 걸 외웠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확신에 찬 말투로 ‘확률은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였다. 우리는 오래된 가이드북에서 찢어낸 지도를 보면서 길을 달렸다. 그리고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도를 욕했다. 책이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길이 사라지나, 여기도 토목공사가 유행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지독한 길치야. 그런 불평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 정도의 길 찾기 능력이라면 하루 만에 모든 곳을 다 돌아보기는 무리였다. “한두 개라도 제대로 찾는다면 다행이지.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그런 식이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였던 응웬 왕조의 황제들이 묻혔다는 이곳의 무덤들은 크고 화려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왕은 보물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인부들을 참수했고, 미리 완성된 자신의 무덤을 거닐며 시를 썼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무덤에 살며 또 다른 살아있는 것을 노래한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생각할수록 낯선 기분이 들었다. “지금 무덤 안쪽을 걷는 건 우리들뿐이고, 사실 왕들은 이미 오래전에 무덤 밖으로 떠나버렸을 거야. 그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 유령의 집을 걷는 기분이야.”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말로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계획한 무덤을 모두 둘러본 다음, 왔던 길을 거슬러 숙소로 돌아갔다.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오토바이가 한 번 멈추기는 했지만 베트남 상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나는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몸을 씻으며 하루의 풍경들을 하나둘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한곳에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고, 그걸 지켜보기 위해 힘들게 찾아간 우리 역시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무덤가의 음산한 기운에 대해, 힘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이 땅을 지배하는 유령에 대해 말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말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구겼다. “미안한데 사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 못 했어. 뭣 때문에 그렇게 심각해진 거야. 날씨가 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보다 우리 그냥 맥주나 마시면 안 될까? 너는 요즘 너무 술을 안 마셔서 심각병이 도졌어.” 그렇게 말하며 바바바(333맥주, 베트남을 대표하는 맥주로 맛이 진한 편이다)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 다음 나를 향해 길게 트림했다. 나는 말로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어쩐 일인지 배가 고파졌다. “고맙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불어버린 쌀국수를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머물게 된다면 나는 하루 종일 수영복만 입은 채로 생활할 거야. 맥주도 수영장에서 마시고 쌀국수도 물속에서 먹을 거야. 선베드에 엎 드려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들면 온몸이 까맣게 타서 피부가 다 벗겨지겠지? 그래도 좋을 거 같아.” 무이네Muine로 떠나기 전에 우리는 수영장 딸린 숙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결론은 언제나 ‘그렇지만 힘들겠지?’로 마무리 되곤 했다. 아무래도 그럴싸한 수영장이 함께 있는 곳은 대개 우리의 하루 치 숙박비 예산을 훌쩍 넘어서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대신 하루에 한 끼씩 덜 먹어서 돈을 아껴보자.” 그런 이상한 이유를 들어가며 우리는 결국 일주일 동안의 사치에 합의했다. (우리가 묵었던 ‘비엔뇨리조트Bien Bho Resort’는 ‘Sea of Memory’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약 30만 동(1만5000원)에서 70만 동(3만5000원) 정도면 더블침대와 싱글침대가 각각 하나씩 마련된 방을 구할 수 있다. 바닷가 쪽 방일수록 조금 더 비싸다.) 더운 나라에 있다 보면 언제나 물이 그립기 마련인데, 침대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몸을 담글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는 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물속에서 보냈다.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바다로 내려갔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냉큼 옷을 벗고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머리에 비를 맞으며 물속에 잠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 지,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첫번째로 자랑할 정도였다. 우리는 후에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빌려 무이네 주변을 여행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무이네의 도로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일자로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이른 아침, 갓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괜히 얼쩡거리다가 방해가 된다며 한 소리를 듣기도하고, 도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비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럴 땐 차라리 웃통을 벗고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모래언덕에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각각 ‘화이트 샌드’와 ‘레드 샌드’로 이름 붙여진 그곳은 무엇보다 발바닥이 불타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널빤지 썰매를 권유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우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금세 다른 여행자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유독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한 아이가 있었다. “미안한데 우리는 썰매를 탈 생각이 없어.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그러자 아이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로와 나는 사막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하며 놀았다. 무릎관절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점프도 하고 텀블링에 실패해 모랫바닥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이 안 됐다며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우리 곁을 따라다니던 아이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자신도 함께 사진을 찍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안될 건 없지. 대신 네 이름을 알려줘.” 자신을 ‘흐엉’이라고 소개한 아이는 두꺼운 후드티를 덮어쓰고 있었지만 사실은 목소리가 앳된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흐엉을 놀이에 동참시켜 함께 사진을 찍고 놀았다. 그리고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며 흐엉이 단 한 번도 품에 안은 널빤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어떤 시선 때문에 마음껏 놀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말로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다시 한 번 가자. 그때는 널빤지 썰매를 한 번 타주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었다. 친구가 생긴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다음날 모래언덕에 갔을 때 우리는 흐엉을 만나지 못했다. 이름을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우리가 늦은 걸까. 역시 그때 탔었어야 했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모래언덕에는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모두가 흐엉처럼 널빤지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본 아이들이 모두 흐엉과 닮았다는 생각은 단지 내 착각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몸에서 떠나간 여행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루비누를 녹여 신발을 빨았고, 골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싸구려 호텔 창가에서 담배를 피웠으며, 국수를 먹기 위해 매일같이 여섯 층의 계단을 오르내렸다는 것. 친구가 되지 못한 어떤 이와 작별했으며, 오토바이 행렬을 피해 겨우 도로를 건너던 이야기. 어쩌면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풍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한 달간 베트남을 여행하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풍경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시골 마을에서 하루를 지내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그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홈통 속으로 비가 흐르고 마당에 구멍이 생기는 과정을 보았고, 굳게 닫아둔 땅콩잼 유리병 속으로 개미들이 기어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여행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조금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그럴 때는 맥주나 마셔버려.” 말로와 나는 한 명이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질 때 마다 그렇게 말하며 서로의 마음을 헐겁게 만들곤 했다. 돌이켜보니 바로 그 균형을 지키는 일과 말랑말랑한 마음을 갖는 일 모두 ‘우리’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December 2014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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