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은 자유 :: THERE
AROUND, Ju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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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은 자유
We are free, Amsterdam! 암스테르담은 자유!
한 도시에서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이 것만으로도 이 동네를 알 것 같아.’ 하며 확신에 찰 때가 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걸으며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 증 거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해봤다. 물론, 이 건 한 여행객의 어설픈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마약과 섹스의 도시, 암스테르담
일을 시작하고 첫 해외여행이었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항공권을 샀다. 주변 사람들이 왜 하필 그 도시를 선택했느냐고 물을 땐, 답하기가 옹색했다. 여행지를 고민하던 시기에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테스트를 해봤다. 거기에서 ‘당신은 다음 생애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야 할 것 같아요.’라는 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신빙성 없는 테스트일지라도 세계의 수많은 도시 중에 하필 그 도시가 나온 것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복잡한 삶에 여행까지 깊이 고민하고 싶진 않았다. 가면 이유를 알 수 있겠지, 하며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렇기에 “암스테르담에 볼게 있나? 왜 거기에 가?”라고 누군가 물을 땐, 바보 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마리화나 냄새였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누군가 피는 마약의 시큼한 냄새를 맡았다. 숙소로 가는 길엔 홍등가를 봤다. 유리창이 달린 좁은 문 앞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성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암스테르담을 ‘마약과 섹스의 도시’라고 부른다. 일정량의 마약과 성매매가 합법화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코지를 당할까 어깨를 펴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거리엔 차나 사람보다 자전거가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전거가 교통수송분담률의 약 43%를 차지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와보니 알 것 같았다. 마약 냄새, 새빨간 거리, 자전거의 속도 같은 것에 어지러운 상태가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도미토리 안의 다른 여행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반고흐 미술관’이나 ‘안네의 집’에 꼭 가보라고 추천해줬다. 그 외에 딱히 유명한 것은 없으니 큰 기대를 하지 말란 말도 덧붙였다. 일주일 넘게 머문다고 하니, 그렇게 오래 있을 만한 도시가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도대체 이 도시는 뭘까? 어쩐지 여행의 마지막 날 같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의 카메라에 담겨있던 것들
지레 겁을 먹고 여행을 시작했다. 추천받은 명소 두 군데는 기다리는 줄이길었다. 안네의 집은 들어가길 포기했고, 반고흐 미술관은 겨우 들어가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평소 사람 많은 곳을 즐기지 않는 내겐 유명하다는 장소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장소를뺀 나머지 곳들은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식당에서도 대기하는 법이 없었고, 갤러리에서도 줄지어 관람하지 않아도 되었다. 중심가가 아닌 이상 거리는 늘 한산했다. 암스테르담 지도는 복잡하게 생겼지만, 걸어보면 만만하다. 길이 비슷하게 생겨 헷갈리긴 해도 지도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않는다. 하루를 분주히 움직였더니 지도의 1/2을 걸었다. 속도를 늦춰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욕심을 덜어주는 적당한 크기였다. 하염없이 걷고 쉬길 반복하는 며칠을 보냈다. 어느 날, 공원에 앉아 그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자전거나 강이 유독 많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상했다. 뭔가를 본 것 같았다. 다시 끝부터 처음까지 돌려봤다. 자전거나 강보다 더 많은 게 보였다. 바로 ‘식물’. 걸어 다니면서 알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곳곳에서 수많은 식물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고 내 카메라엔 그런 게 담겨 있었다.
틈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
암스테르담은 암스텔Amster과 담Dam의 합성어로 암스텔 강에 둑을 쌓아만든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변으론 온통 강이 흐른다. 산이나 들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게 아쉬워서였을까? 이 도시의 곳곳에는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 스스로 자라나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라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특히 건물 앞의 화단이 그랬다. 보도블록의 일부를 깨서 만든 틈에 흙을 넣고 주변을 벽돌로 둘러 식물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이걸 만들었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내 집 앞에 식물을 심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암스테르담은 땅이 좁다. 한 건물에 여러 사람이모여 살고 있으므로 그 앞의 좁은 공간을 화단으로 쓰긴 애매하다.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집 앞의 공간을 식물을 위해 나눠주고 있었다. 서점에 가도 식물에 관한 코너는 크게 마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꽃 시장과 꽃집이 보였다. 길을 가다보면 집 앞의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도 만나곤 했다. 식물이 저절로 자라고 있지 않다는 걸 확신한 것은 그들을 더 가까이서 보았을 때였다. 넝쿨이 있으면 철사 같은 것으로 그들이 자랄 수 있게 지지대를 마련해줬다. 건물 바로 앞에서 자라는 나무가 도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끈을 연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원사가 모양새를 다듬거나 정교하게 관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투박하고 서툴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길을 가다 멈춰서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식물만 우두커니 있는 자리에선 그걸 돌보는 사람들을 상상해봤다. 그런 걸 그릴 땐, 이 도시에 사는 이들과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자유와 방종의 사이에서
앞서 말했듯 암스테르담은 자유의 도시다. 주말이면 유럽 곳곳에서 젊은 사람들이 마약과 성매매를 즐기러 이곳을 찾는다. 그로 인해 주말엔 커피숍(마약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우리가 아는 커피숍은 카페로 칭한다.)과 홍등가 주변이 북적거린다. 거리를 걷다가 한 남성이 “I am free!”라고 외치는 것을보았다. 아무래도 취한 것 같았는데, 자신은 영국에서 왔고 다음 날 결혼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갑자기 거리에서 오줌을 누었다.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찌푸렸다. 나는 무표정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 그 남자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자유와 혼동해서 쓸 수 있는 말 중 ‘방종’이란 것이 있다. 비슷한 느낌이지만 방종은 자유의 반대말이고, 흔히 책임지지 못 한 자유를 방종이라 부른다. 네덜란드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 이는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민은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자유를 요구해왔다. 그들은 천천히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리고 방종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긴 시간 말해온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네덜란드에선 마약 중독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고 재활을 돕는 수용 시설에 보낸다고 한다. 마약 복용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인정해주되, 다른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매춘업 종사자들에게 세금을 걷는 대신 그에 걸맞는 의료보험 등의 혜택을 준다. 또한 거래 영역을 제한하고 그들의 위생과 안전을 우선시한다. 서로를 마땅히 책임질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자는 고국에서 터부시하던 것들은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잠시 즐겁겠지만, 그곳 사람들에겐 마약이나 성매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듯했다. 나름의 선입견을 품고 암스테르담에 갔던 것 같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밤은 위험할 것이라 여겼다. 여행의 첫날 밀려든 피곤도 그런 편견에서 온 듯 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도시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단정하고 다정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식물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알 것도 같았다. 자유 안에서 방종하지 않기 위한 그들의 노력. 마음만 먹으면 쉽게 몸과 마음을 해칠 수 있지만, 그것들 사이에서 건강하게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 사는 것들의 ‘자유’를 함께 책임지면서.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작 일주일간 그곳에 머무르며 본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도시의 틈에서 자라는 식물을 바라보며 했던 상상이다. 식물은 소리가 없고 거짓말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식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대부분 선하고 건강하다. 조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면, 아마 그런 연유일 것이다. 아침마다 집 앞의 말 없는 친구들에게 물을 주고,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나서는 그 도시의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은 한 여행자에겐 충분히 자유로운 일이었다.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며, 행복이다. - 헤르만 헤세
암스테르담의 숨어있는 장소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했던 테스트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암스테르담에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소는 없을지 몰라도 작고 알찬 곳들이 많았던 암스테르담. 적당히 게으르고 느린 여행자들에게 몇 가지 장소를 소개한다.
Ecomama Hotel
Valkenburgerstraat 124, 1011 NA Amsterdam ecomamahotel.com +31-20-770-9529.
암스테르담은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싸고 괜찮은 호텔이 적다. 에코마마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숙소로 호텔보단 호스텔에 가깝다. 도미토리부터 개인실까지 다양한 방이 준비되어 있고, 라운지에는 다양한 시설과 함께 카페가 있다. 깔끔하고 안전한 숙소를 찾는 여성들에게 좋을 만한 곳이다.
Lot Sixty One Coffee Roasters
Kinkerstraat 112, 1053 ED Amsterdam facebook.com/lotsixtyonecoffeeroasters +31 6 42613342
들렀던 카페 중에 가장 맛있는 커피가 나왔던 곳이다. 메뉴는 단순하게 ‘BLACK(ESP,LONG), WHITE(CAP,LAT,FLAT), FILTER(VCO)’ 뿐이다. 그만큼 자신 있게 커피를 내리는 듯했다. 커피 외의 음료는 판매하지 않으며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을 함께 곁들일 수 있다.
Boekie Woekie
Berenstraat 16, 1016 GH Amsterdam boewoe.home.xs4all.nl +31 20 6390507
여섯 명의 예술가가 80년대에 만들었던 책방이다. 이들은 독립출판물을 중점적으로 판매하는데, 암스테르담의 출판 디자인과 예술을 한눈에 알아보기에 좋다. 책 외에도 다양한 그림이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곳이다.
Farmer’s Market on Noordermarkt
Noodermarkt, 1015 MV Amsterdam 매주 토요일 9:00~15:00
주말이면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다양한 시장이 열린다. 이곳은 농부들이 직접 나와 신선하고 건강한 것들을 판매한다. 치즈, 달걀, 생선, 빵, 꿀, 식물 등 다양한 농작물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이 판매하는 것 중에는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이 많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 생긴다.
June 2015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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