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소녀와 스물넷여자의 우정에대하여 :: THERE
AROUND, Octo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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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소녀와 스물넷여자의 우정에대하여
IRELAND 다섯살소녀와 스물넷여자의 우정에대하여
제대로 찾아온 걸까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
‘미운 다섯살’이 주는 행복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처음, 그 아이를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커다란 저택의 1층에서 만났는데, 보자마자 큰소리로 울었다. 그 또래의 꼬마와 마주한 것이 처음이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울기까지하나.’ 싶어 당황했다. 애 엄마는 처음이라 그렇다며 같이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정말 괜찮을까. 그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베이비시터가 되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박선아
아일랜드Ireland라는 나라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스물넷이었고, 갑작스레 외국에 살게 되었다. 복잡한 일들이 한꺼번에 닥쳤는데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문제들 사이에서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도망쳤다. 대부분 도망친 사람들의 자리가 그러하듯, 내 자리도 편치 않았다. 딱히 죄를 짓고 도망친 것도 아닌데 앉는 자리마다 불안이 가득했다.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고 이내 지쳐버렸다. 도망친 땅엔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브레이Bray라는 작은 도시였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길에서 한국인을 보는 것은 드문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길에서 한국말로 나를 불러 세웠다. 이 마을에 2년간 살았지만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녀는 일자리와 집을 제공해주겠다고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말이 집이지, 커다란 저택의 꼭대기 방 한 칸이 그녀의 공간이었다. 그 방을 무료로 받는 대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돕는다고 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니 내가 이 집의 일을 이어받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잘 곳을 공짜로 받는다는 생각에 기뻤는데, 막상 아이를 눈앞에 두고 나니 막막해졌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울어댔고 난 아이보다 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높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이곳에 제대로 찾아온 걸까.
꼬마는 다섯 살, 이름은 일로나Ilona였다. 한동안 일로나는 울기만 했다. 아이 엄마는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엄마는 금요일, 토요일마다 파티에 갔다. 야한 드레스와 높은 힐을 차려 입고 문을 나서는 순간, 아이는 고래고래 울기 시작했다. 그 흔한 조카조차 돌봐본 적이 없었기에 속수무책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별짓을 다했다. 웃긴 표정도 지어보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화도 내봤는데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한국에서 들고 온 우쿨렐레가 생각났다. 유유자적 바닷가에 앉아서 그걸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들고 온 짐 덩어리. 그걸 꺼내와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악기의 등장에 일로나는 울음을 그치고 악기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라고 말했다. 내가 연주할 수있는 곡은 몇 안 되었다. ‘곰 세 마리’, ‘작은 별’,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곡들. 동요여서 그런지 아이는 곧잘 멜로디를 흥얼거렸고, 난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계속해서 연주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몰랐다. 아이는 그러다 금세 잠이 들었다. 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아이가 울 때, 가장 좋은 약은 우쿨렐레였다. 둘이 침대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조금씩 좋아졌다. 연주했던 곡들 중, 아이가 가장 좋아하게 된 곡은 ‘Fly me to the Moon’이다. 내가 처음으로 외워 부른 영어노래. 처음 들려줄 땐, 악보와 가사를 흘끔거려야 했는데 나중엔 술술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일로나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이 엄마는 “어디서 저 노래를 배워왔는지 계속 부르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을 재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밖에서 같이 노는 일이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바닷가로 산책을 가면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했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춤을 췄다. 백조에게 빵을 주거나, 소꿉놀이도 종종 했다. 이외에도 아이는 창의적으로 놀이를 개발했는데, 쓰다 보면 한없이 많을 듯하다. 매번 기쁜 마  음으로 놀았다면 좋았겠지만 상당히 귀찮은 날도 많았다. 아이는 지치는 법이 없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저런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졌다. 가끔 악마 같  은 모습도 보였는데, 본인만 모를 뿐 내 눈에는 그게 빤히 보여 쥐어박고 싶은 적도 많았다. 바닷가에 장이 서면 단음식을 파는 가게와 놀이기구도 함께 들어  섰다. 그걸 먹거나 타겠다고 조를 때는 미칠 것 같았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면, 나도 같이 앉아 울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혹시라도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럼에도 애틋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몇 있다. 바다 앞에서 물수제비를 뜨다가 갑자기 일로나가 물었다. “모모, 너희 집은 어디야? 왜 집에 안 가고 우리 집에 있어?” 나는 바다 끝을 가리키며 답했다. “우리 집은 저기 끝에 있어. 멀어서 못 가. 그리고 우리 집에 가면 나도 엄마, 아빠가 있어.”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방방 뛰었다. “나도 너희 집에 갈래! 초대해줘.” 나는 당장은 안 되지만 언젠가 꼭 초대하겠다고 했고, 그 후로도 계속 아이는 바다를 볼 때마다 우리 집 얘길 했다. 몇 층이냐, 개도 있냐,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 별의별 것을 다 물었고 나는 가끔 아이가 보지 못할 때, 눈물을 훔쳤다. 나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 일로나와 나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또래의 우정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종종 ‘거대한 비밀’을 공유했다. 만화 영화를 본 것, 젤리를 사준 것, 양치질을 하지 않은 것. 아이는 “엄마에겐 거대한 비밀!”이란 말을 꼭 붙였고, 우리 사이에 비밀이 늘어갈수록 엄마 뒤에서 윙크를 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재우려는데 그녀가 한 가지 ‘왕 거대한 비밀’을 말해줄 테니, 눈을 감으라고 했다. 또 어떤 비밀을 폭로하려고 하나,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보라고 했다. 작은 다섯 손가락으로 내 두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곤 속삭이듯 말했다. “모모,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엄마보다 더 좋을 때도 있는데 그건 엄마에겐 비밀이었으면 좋겠어. 에이미(절친한 유치원 친구)보다도 좋을 때가 있는데, 그것도 물론 에이미에겐 비밀이야.” 어쩐지 수줍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말을 뱉고는 기절하듯 잠들었고,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한참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일랜드를 떠나기 얼마 전, 아이 엄마가 내 방을 두드렸다. 누런 봉지를 내밀면서 일로나가 오늘 유치원에서 컵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내가 들어오면 꼭 전해주라고 했단다. 봉지를 열어보려는데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케이크 위의 아몬드는 집에 오는 길에 못 참고 빼먹었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컵케이크 두 개가 들어있었고 아몬드가 박혀있던 자리에는 구멍이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이걸 만들었을 작은 친구를 생각하니 애틋했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몬드를 먹을까 말까 고민했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졌다. 따뜻한 차와 함께 그 선물을 뱃속으로 밀어 넣으며 잠시 고민했다.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를까….’ 하지만 아이와 나, 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남의 집에 얹혀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주인 부부에겐 결벽증이 있어 집안 청소를 할 땐, 3시간이 걸렸다. 부엌에 있는 음식은 다 먹으라기에 많이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음식을 숨겨놓는 것을 발견해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다. 눈칫밥이 어떤 것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집을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아이에게 어떤 얘길 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처음 만나던 날처럼 울면 어쩌나, 앞선 걱정도 들었다. 아이에게 “나는 내일 네가 집에 돌아오면 없을 거야. 우리 집에 가거든.”이라고 말하며 눈치를 봤는데, 아이는 밝게 웃었다. “드디어 엄마, 아빠를 보는구나. 좋겠다! 나 그럼 이제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되는 거지? 기대된다!” 나는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물론.”이라고 했다. 그 후로 아이가 나를 찾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우리 집에 놀러 가자고 몇 번 졸랐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다섯 살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듯 그 친구도 금세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 남은 날들에 내가 그 아이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로나는 지금 9살이 되었을 것이고 만난다고 해도 어색할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엔 그런 관계도 있는 듯하다. 둘밖에 없는 것처럼 한때를 보냈지만, 결코 다시 볼 수는 없는 사이. 가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꼭 보지 않아도 괜찮을 듯 하다. 이렇게 우리가 같이 있던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은 종종 후회가 되기도 한다.
October 2015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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