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거닌 몽골 :: THERE
AROUND, Nov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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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거닌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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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한 몽골여행
엄마는 준비된 포토그래퍼
엄마의 생일파티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엄마와 떠난 첫 여행이었다. 몽골은 넓었고, 날 것이었고, 엄마는 힘들어 했다.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온통 엄마였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박선아, 오세분
아빠는 삼 년간 투병했다. 엄마는 그 옆을 떠난 적이 없고 나도 거기 있었다. 병원 냄새가 우리에게서 잊힐 무렵, 엄마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곳을 알아보다가 몽골을 선택했다. 순전히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었고 엄마는 내 결정을 얼떨결에 따라줬다. 몽골에 막 도착했을 땐, 둘 다 좋았다. 공항에서 벗어나 버스를 타고 몇 분을 달렸을까. 초원이 펼쳐졌고 말, 염소, 양, 소 같은 동물들이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창밖을 보며 감탄하기 바빴고 도착한 게르Ger(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텐트로 한국에서는 몽골 텐트라고도 불린다.) 캠프 안에서도 낭만적인 밤이라며 감상에 젖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비슷한 풍경을 마주했다. 끝없는 평지, 셀 수 없는 동물들, 잔잔하게 흐르는 강 같은 것들…. 나는 끊임없이 좋았고 점점 좋아졌지만, 엄마는 지쳐가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머무는 캠프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았고, 차가 운 물마저 졸졸 흘렀다. 텐트는 천장과 바닥이 뚫리다시피 되어 있고, 안에 놓인 나무 침대는 딱딱했다.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자꾸 잔소리했다. “엄마, 이 정도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우리 인생에 딱 일주일인걸?” 이런 소릴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병원 침대에서 몇 년을 생활했는데, 그보다 더 불편한 나무 침대에서 일주일을 잔다니. 나는 왜 휴양지의 좋은 호텔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 어쩌자고 몽골을 선택했을까.
여행을 다닐 땐, 똑딱이 카메라 두 대를 갖고 다닌다. 하나는 필름카메라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카메라다. 여행사진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 여행 중에 사진을 찍는지 엄마는 잘 몰랐을 것이다. 느릿느릿 걷다가 한참 뭔가를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거나 멍하게 있곤 했다. 그러다가 옆을 보면 엄마는 가만히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영 낯선 것을 발견한 표정으로. 엄마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말없이 사진을 보던 엄마는 “카메라를 하나 살까?”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작년의 언젠가도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좋은 생각이 났다. “엄마, 이번 여행 동안 이 디지털카메라를 빌려줄게. 여기에 엄마가 본 걸 담아. 돌아가면 이 여행으로 기사를 하나 써야 하는데, 그때 엄마 사진을 실을게.” 엄마의 표정이 제법 비장해졌다. 그 후, 엄마는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것 좀 봐봐. 잡지에 실릴 만한 것 같아? 괜찮아?”라고 자꾸 묻기에 “걱정하지마. 못 나와도 내가 엄마 사진은 꼭 실어줄게.”라고 놀리듯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가 잘 때 몰래 훔쳐본 카메라 속의 사진은 아름다웠다. 문득, 내가 처음 사용했던 필름카메라가 엄마 장롱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향집에는 창고 가득 앨범이 있고, 그 안에는 아빠, 나, 여동생의 사진이 가득 들어있다. 그건 모두, 엄마가 찍은 것이다.
여행 일정 중에 엄마의 생일이 껴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뭘 준비해가는 게 좋을까, 고민했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빵집이나 레스토랑을 찾긴 어려울 것이고, 케이크를 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 방식을 떠올렸다. 동생과 용돈을 모아 초 코파이를 사서 케이크를 만들곤 했다. 그 마음으로 한국에서 초와 몽쉘을 여행 가방에 숨겨갔다. 생일날, 아침상에 조악한 케이크를 내밀었다. 엄마는 활짝, 정말 활짝, 웃었다. 그때 알았다.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엄마의 그 웃음은 아주 오래전에 보고,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날 밤, 각자 침낭에 누워 잠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워놓은 난로 안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는 “참 따뜻하고 행복하다.”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침낭 속에서 말없이 웃었다. 누구도 그때의 내 표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아마, 아주 오랜만에 지어보는 유의 미소였을 것이다.
몽골여행에 대한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크게 할 얘기가 없다. 일주일간 매일 같은 생활을 했다. ‘아침을 먹는다. 낮잠을 잔다. 버스를 타고 다른 캠프로 이동한다. 캠프에 도착하면 몽골 텐트에 짐을 푼다. 점심을 먹는다. 엄마와 주변을 산책하거나 또 낮잠을 잔다. 가끔 말이나 낙타를 타거나 책을 본 다. 저녁을 먹는다. 씻거나 못 씻는다. 장작을 피운다. 잔다.’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와 있다 보니 아빠가 아프던 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이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려고 애쓰지만,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뼈 안쪽이 저릿하다.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일이라 내 마음 편하자고 고마운 점을 생각하곤 한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이별을 먼저 그리게 되었다. 함께 산 지 일 년이 된 고양이, 고향집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부모님, 베란다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화분들….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내 쪽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어느 날 갑자 기 찾아온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에 가까워지곤 한다.
사람을 태우고 몇 번씩 사막을 오가다 다친 낙타를 봤다. 그걸 보고 슬퍼하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별나게 좀 굴지 마. 저번에 코끼리 탈 때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누구에게나 다 주어진 삶이 있고, 네가 슬퍼해도 소용이 없어.” 나는 정말 슬퍼졌다. 며칠 전에 눈물을 보인 엄마에게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는 마음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것 같다. 슬퍼하는 이를 비난하기가 쉬워선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슬퍼하는 이는 그렇지 않은 이에게 슬픔을 강요해선 안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울던 날도, 오늘도 그러지 못했다. 짜증을 낸 엄마에게 툴툴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사람들이 낙타 고삐를 너무 당겨서 코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라고 중얼거리며 결국 타기 싫던 낙타를 탔다. 엄마가 듣지 못하게 낙타 귀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곤 반대편에서 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엄마를 향해 최대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내겐 낙타를 향한 슬픔보다 더 중요한 슬픔이 있었다. - 몽골에서 쓴 일기 중에서
Nov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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