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귀갓길 :: THERE
AROUND, Nov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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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귀갓길
다섯 번의 귀갓길
머무른 자리가 좋았던 이유
동네 골목 잡화점 Kadoya
60년 된 집의 지붕 아래서
430엔, 아이스 코히
집으로 가는 길
일주일쯤 교토에 머문다면 이곳에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는 건 내겐 설렘보다 두려움을 주는 일이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기 전까지 엄청난 긴장 상태다. 그래서 여행의 여정 중에 짐 푸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준비해준, 누구의 것도 아닌 방. 떠남이 예정된 사람들이 머물러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늘 거기 있는 방. 그런 곳에 들어설 때 비로소 여행이 살갗에 닿는다. 교토에 머무르던 일주일, 내게도 그런 방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스친 낯선 방들과 달리 나는 그곳을 자꾸만 집이라 불렀다. 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
여행을 준비하는 일에 티켓 구매, 숙소 예약, 일정 짜기라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면 나는 주로 숙소 예약에서 멈추는 편이다. 일정을 짜는 건 여행지에서 다음 날을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구태여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그 ‘일’은 여행지에서 하면 재미있기까지 하다. 교토로 떠나기 2주 전, 숙소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지난 여행에서 묵었던 숙소들을 생각했다. 옥상에서 밤새 시끄럽게 파티를 해 한숨도 못 잤던 곳. 사교성이 지나친 호스트 덕에 반강제로 모여 밤마다 술을 마셨던 곳. ‘이런 덴 다신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숙소들 끝에 좋았던 숙소 두 곳을 떠올렸다. 한곳은 포르토에서 친구와 함께 통째로 빌린 화가 아저씨의 아파트였고 다른 곳은 파리의 한인 민박집이었다. 우연하게도 포르토와 파리는 내가 가장 사랑한 도시이기도 했다. 겉보기엔 전혀 찾을 수 없던 두 숙소의 교집합을 한참 생각했다. 그건 위치였다. 중심가나 유명한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 한국에서는 못 입는 과감한 옷을 얼마든지 입을 수 있고 날이 흐려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익명성이 보장된 중심부가 아니라, 어쩐지 그런 건 어색한 동네. 그렇게 도심으로 떨어진 동네로 가자 마음을 먹은 뒤 포르토에서 숙소를 구할 때 썼던 에어비앤비Airbnb 사이트에 들어갔다. 얼마간 이런 저런 숙소를 검색하다 교토역에서 20분쯤 걸린다는 어느 동네의 방 하나를 예약했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실린 지도를 펼쳐 교토의 북쪽을 잠시 그려보았다.
떠나는 날 아침, 비행기를 놓쳤다. 덕분에 공항에서 다시 비싼 값을 치르고 티켓을 끊어 우여곡절 끝에 교토에 닿았다. 점심이면 도착할 줄 알았지만 숙소가 있는 고쿠사이가이칸역을 빠져나온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지쳐있었고 배가 고팠다. 주인이 메일로 보내준 그림지도를 보고 터벅터벅 걸었다. 낮은 아파트조차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모든 집이 작은 정원을 갖고있는 동네였다. 길을 찾다가 반쯤 닫힌 문 사이로 노란 빛이 새어 나오는 건물을 지나쳤다. 누군가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주택가에 이런 곳도 있네, 라고 생각하며 걸어가던 나는 지도를 보고 다시 지나친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이 내가 묵을 숙소였다. 예약한 숙소의 호스트인 루미는 그곳에서 60년 된 일본식 집을 공방과 숙소로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2층에 있는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 방을 여행자에게 내어준다. 공방의 이름은 ‘카도야 adoya’. 골목 어귀에 있는 가게란 뜻으로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는 이름이다. 가게의 한쪽에는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업 공간과 함께 잡화점에 걸맞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그녀가 직접 찍고 인화한 사진, 금속과 나무로 만든 조각상들이 일용품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가 처음 도착한 날도 그녀는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었다. 루미는 이곳에 공방을 열기 전, 트럭운전사로 5년 동안 일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영상과 오브제를 활용한 전시를 주로 했지만 24시간 동안 일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진 않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트럭 운전을 하면서도 작업은 계속 하고 있었어. 다만 내 작품이 일상과 동떨어져서 미술관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바탕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런 마음을 담은 루미의 작품들은 공방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접시나 그릇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비슷한 위치에 금속 공예품이 있고, 판매하는 액자 안에 그녀의 그림이 있는 식이다. 공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옆집 부부, 근처 예술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대부분 동네 사람이었다. 초등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이 아지트인 양 몰려들었다. 루미에게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보여주고 색종이로 꽤 정교한 스시를 한 접시 만들어 내오기도 했다. 특히 앞집에 사는 두 살 터울의 네 자매와 옆집에 사는 형제가 단골손님이었다. 저녁을 먹을 즈음이면 아이들을 부르러 온 엄마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빵이나 직접 기른 채소를 주고 가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루미에게 사실 난 옆집에 사는 사람도 이사 온 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도 오래 번화가에 살았지만 그곳에서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이틀을 1층의 다다미방에서 보내고 다락에 처음 올라간 날, 나는 “와!”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꽤 높고 위태로워 보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밑에선 보이지 않았던 공간이 나타났다. 아래는 모두 내려다보이면서 내가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방. 그녀가 공방에 자주 오던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만든 다락이라고 했다. 발을 위로 쭉 뻗으면 다리가 닿는 목조 가옥 아래서 자기 전 이따금 지붕과 벽면의 나무를 만졌다. 이렇게 지붕과 가까운 곳에서 잠이 든 적이 있었나. 지붕 위에는 바로 하늘이 보이겠지. 별은 몇 개나 떴을까. 이정도면 셀 수 있겠다 싶을 만큼만 떴으면 좋겠다. 바깥과 내가 누운 방 사이에 지붕 한 겹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상상을 자주 했다.
교토에서의 일상은 매번 비슷하게 시작됐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눈은 떠졌고 오전 시간은 늘 동네에서 보냈다. 동네 카페, 동네 빵집, 동네 밥집, 동네 공원. 가게의 주인들은 엉터리 일어로 주문하는 나를 보고 “혹시, 루미?”하고 그녀의 집에서 머무느냐는 다정스러운 짐작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 나 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가 이 동네에서 어떤 사람인지 그들을 통해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 뒤에는 서툰 언어의 틈에 손짓, 몸짓, 눈짓을 채우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떨 때는 단순한 단어로만 이어지는 직선적인 대화가 서로의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이름도 모르고 드나들었던 카페는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아저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는 하와이에서나 입을 법한 화려한 셔츠를 입고 있었고, “아이스 코히, 플리즈”라고 말하면 얼음을 손에 쥐고 뭉툭한 드라이버로 으깨 잔에 담아주었다. 카페에서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늘 최신 제이팝이 흘러 나왔다. 너무 시끄러운게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을 했지만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으로 신문을 읽거나 아저씨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나가는 게 내 일과였다. 집에서 묵는 마지막 날, 처음 왔던 날의 일기를 차례차례 넘겼다. 일기장 귀퉁이에 그날 쓴 돈을 간단하게 적어두었는데 다시 보니 날짜 아래에 하나같이 430엔이 적혀있었다. 그 카페의 아이스 커피 가격이었다. 내일은 430엔 대신 다른 가격이 적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쩐지 아쉬워졌다. 교토는 많은 사람들이 오사카에 머물다가 당일치기로 들르는 곳이지만 일주일도 부족할 만큼 갈 곳도, 볼 것도 많은 곳이다. 천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터라 그 자체로 유적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토를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모퉁이의 작은 가게들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라는 말이었다. 떠나는 날을 품고 다니지만 다음의 기약은 없는 여행자에게 그만큼 위로가 되는 말은 없었다.
루미의 집에 다다를 때면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공방에서 루미가 작은 나무 조각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 뒷모습과 불빛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녀는 작업대에 앉아 고글을 끼고 작업할 때도 있었고, 동네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작은 나이프를 움직여 조각을 하기도 했다. 낙타 같기도, 기린 같기도 한 작은 조각상이었다. 가게 안에 그런 조각상이 몇 개 더 있었다. 숙소에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어떤 날 저녁, 루미에게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그마한 집 모양의 나무 조각을 가져오더니 조각상의 머리 위에 올렸다. 머리 위에 있던 전등에 불이 켜져 집을 밝혔다. 조각상의 이름은 ‘이에지いえじ’, 귀로라는 뜻이었다. “이 작업을 시작할 때도 몰랐는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내가 이런 걸 만들고 있는지 깨달았어. 어렸을 때 항상 ‘난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질문이 있었거든. 그걸 아직도 품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이 질문이 나한테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 모두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고, 그 길을 밝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집도 물론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해.” 루미와 공방 앞 의자에 앉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만났던 네 자매의 첫째 요시코가 집 마당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현아상!”하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타국의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이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손만 흔들었다. 그날 루미와 요시코가 밝혀주었던 다섯 번째 귀갓길의 풍경을 생각하면, 이에지 머리의 집을 비추던 불빛이 떠오른다. 그들을 우연히 만난 작은 가로등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조금 한적한 곳에서 만났던 가로등 덕에, 낯선 땅의 숙소로 향하는 길을 나는 ‘집으로 가는 길’ 이라 부를 수 있었다.
01. 케이분샤 이치죠지점Keibunsha Ichijojiten 1977년 문을 연 서점. 미술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이 있는 이치죠지역 근처에 있다. 서점에 있는 책들은 직원들이 함께 주제를 정해 고르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아름다움, 오브제로서의 가치도 책을 비치하는 기준 중에 하나다. 기획 전시나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다양한 잡화도 함께 판매한다. 이곳에서 한 갑 이상의 성냥은 기내 반입 금지라는 걸 잊고 어라운드 식구들에게 줄 선물로 성냥을 열한 갑이나 샀다. 결국 공항에서 모두 버리고 빈 성냥갑만 가져왔다. 기념품으로 성냥은 금물이다. 10 Ichijojiharaitono-cho, Sakyo-ku, Kyoto / +75 711 5919 / 10:00~22:00 (연중무휴) 02. 구라마 산Kurama Mountain 루미의 집을 떠나는 날, 그녀에게 교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물었다. 그녀는 휴식이 필요할 때 구라마 산으로 간다고 했다. 교토의 북쪽에 있는 산으로 에이잔 전철의 마지막 역인 구라마역에서 내리면 된다. 전체를 도는 트래킹 코스는 넉넉히 2~3시간이고 30분 정도 걸리는 구라마데라鞍馬寺까지만 갔다 내려와도 좋다. 역 근처에는 구라마온천이 있는데 역에서 무료 셔틀을 타고 갈 수 있다. 도보로는 12분 정도다. 온천은 실내와 실외에서 모두 즐기거나 실외에서만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코스로 나뉘어있다. 520 Kuramahonmachi, Sakyo-ku, Kyoto / +81 75 741 2131 03. 교토부립식물원Kyoto Botanical Garden 카페와 빵집이 많기로 유명한 기타야마역에 있는 식물원이다. 케이분샤가 있는 이치죠지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흐른다. 오카리나를 불거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식물원 옆에는 명화의 정원Museum of Fine Arts이라 불리는 건축물이 있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으로 식물원을 먼저 들리고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나무나 꽃이 없어도 정원일 수 있다는, 그것도 아름다운 정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Shimogamohangi-cho, Sakyo-ku, Kyoto / +75 701 0141 / 09:00~17:00(입장은 16:00까지) / 12월 28일~1월 4일 휴무
November 2015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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