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겨울여행 :: THERE
AROUND, Nov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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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겨울여행
8월의 겨울여행
호주는 겨울이라고?
도미가 영어로 뭐더라
아보 원정대
성실한 삶의 선물
부드럽고 맛있는 커피,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 대자연의 풍요로움과 삶의 여유, 호주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정작 내가 얻은 가장 큰 여행의 가치는 타국에서 15년 동안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글·사진 김주영 에디터 김건태
작년 말, 자주 이용하는 항공사에서 빅 세일 이벤트 메일을 받았다. 이 저가 항공사는 연말이 되면 다음 해 일 년 치 항공권을 아주 싼 가격에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나는 생각 없이 마우스를 딸깍거리다가 저렴하게 나온 호주행 항공권을 발견했다. 호주는 왠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휴가를 간다면 역시 8월쯤이 괜찮겠지? 오페라하우스도 한번 봐야겠지? 하는 생각에 시드니로 들어가 골드코스트로 나오는 항공권을 무작정 끊었다. 골드코스트는 동행인의 친척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7개월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불현듯 호주행 항공권이 떠올랐다. 메일을 확인해보니 출발 날짜는 어느덧 3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나는 부랴부랴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8월의 호주가 겨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때였다. 적도의 반대편에 있는 호주는 한국과 날씨가 정반대라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친구들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왜 그 말들을 한쪽 귀로 흘려 들었던 것인지. 설상가상으로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올해는 호주에 유례없는 한파가 찾아와 매우 춥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방콕은 일 년 내내 한여름의 날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방콕에서 겨울옷을 찾았지만, 옷 가게 직원들은 모두 나를 이상하게 볼 뿐이었다. 결국엔 옷장을 모두 뒤져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 가장 두꺼운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올 초에 한국에 다녀왔을 때 입고 왔던 얇은 코트를 찾아냈다. 동행인 J는 그마저도 없어서 한국에서 오는 친구에게 택배를 부탁해야 했다. 추위를 막아줄 수 있을 법한 것들은 모두 가방에 꾸역꾸역 넣었다. 시드니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찾아서 예약을 하고, 골드코스트에서는 J의 이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대충의 갈 곳들만 정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직접 결정해 움직이는 것으로 계획을 마쳤다. 출발 이틀 전, 호주에 비자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자가 있어야 했다. 이러다 우리 호주에 못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다행히 비자는 5분 만에 발급되어 메일로 도착했고, 출발 전 마지 막까지 불안한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밤을 꼬박 새워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태국 생활에 관심이 아주 많은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난 덕분에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찜통 같은 도시에 있었는데 갑자기 겨울 날씨를 겪다니, 머릿속도 추위로 얼어붙은 기분이 들어 얼떨떨했다. 급히 가방 안에서 코트를 꺼내어 걸치고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리사의 집이었다. 써리힐Surry hills에서 ‘멀린’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 그녀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집안 곳곳 태국에서 사 온 장식품들을 진열할 만큼 태국을 좋아했다. 태국에서 준비한 사셰Sachet(향 주머니)와 고양이 멀린의 간식을 선물로 주자 그녀는 너무나 좋아했다. 고양이 간식은 사실 따로 사연이 있는 거였다. 호주 공항은 입국할 때 심사가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더니, 간식의 원료가 뭔지 묻는 직원에게 생선으로 만들었다고 대답하니 어떤 생선으로 만들었는지 물어왔다. “에이, 고양이 간식에 어떤 생선인지 나와 있을 리가 없잖아.” 라며 뒷면을 살펴보니 떡 하니 ‘원료: 도미’라고 적혀 있었다. 다행히도 간식은 뺏기지 않고 무사히 멀린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리사는 어젯밤에 너무 추워서 두툼한 이불로 바꿨다면서 방을 보여주었다. 작지만 깨끗하고 아늑한 방이었다. 반 층을 올라가면 거실과 주방이 있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무엇이든 꺼내먹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추운 날씨지만 멀린을 위해서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테라스에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뷰를 가진 집이었다. 시드니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오페라하우스를 찾는 것이었다. 집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볼 수 있다며 리사가 알려준 팜 코브Farm Cove까지 걷기로 했다. 버스를 타면 금세 갈 수 있었지만 사실 버스노선이나 버스 타는 방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고, 왠지 걸으며 시드니를 둘러보고 싶다는 핑계로 걸어가기로 했다. 추위와 싸우며 30여 분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TV에서만 보던 오페라 하우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거의 없고, 패기 넘치는 시드니 사람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채 조깅을 하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를 옆에 두고 조깅을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건너편에서, 바로 앞에서, 페리 안에서, 계속해서 오페라하우스는 눈에 띄었지만,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방콕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사실 이번 호주여행을 통해 무언가 카페에 변화를 줄만한 영감을 얻고 싶었다. 딱 이틀뿐인 시드니 일정 동안 많은 카페를 찾아다녔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카페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운영하는 파라마운트 커피 프로젝트Paramount Coffee Project와 카페 메시Messi였다. 두 곳 모두 진한 바디감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커피의 맛이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같은 바리스타가 번갈아 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호주의 울런공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에서 공부하고 있는 태국인 친구 샘을 만났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태국인 친구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공교롭게도 한국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태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샘을 위해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여야겠다는 핑계로 그날 밤은 덩달아 과식을 했다.
골드코스트에는 함께 동행했던 J의 이모님 부부가 거주하고 계셨다. 감사하게도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 주셔서 이모부님의 차를 타고 곧장 해변으로 향했다. 골드코스트의 날씨는 봄날처럼 매우 따뜻해서 해변에는 짧은 서핑복을 입고 서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춥다며 코트에 스타킹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방콕에서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탔던 호주 거주민이 바이런 베이 Byron Bay는 호주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니 꼭 들려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과연 그 말이 정답이었다. 꼭대기의 하얀 등대와 등대 아래로 이어진 산책로, 전망대 바로 앞까지 나와서 재주를 부리는 돌고래 떼와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흰 고래까지 만났다. 골드코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밖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끝없이 이어졌다. 바다는 골드코스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해변 앞 공원에서 그릴을 해먹거나, 애완동물을 데려와 운동을 하거나, 바닷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식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풍요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 것 역시 바다의 너른 품 덕분이리라.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나는 탬보린 마운틴Tamborine Mountain이 좋았다. 숲 속 산책로를 따라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데 풀 하나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모부님이 어깨의 풀을 떼어주며 “이 나무는 잠시만요 나무야Wait a bit tree.” 라고 설명해주셨다. 잎 뒷면에 도돌도돌 돌기가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을 붙잡는다며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왠지 나무의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골드코스트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였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들을 한눈에 보고 있자니 이러한 풍경을 매일 바라보는 이들의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포도주 양조장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샀다. 저녁 식사의 샐러드에 넣을 아보카도를 사기 위해 즉석에서 아보 원정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탬보린 마운틴 곳곳에 있는 아보카도 농장 입구에 무인판매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모부님 말에 따르면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아 종종 구입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좋은 아보카도들이 다 팔려버렸는지 몇 군데의 판매대를 지나쳐도 결국엔 사지 못했고, 아보 원정대의 미션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모님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식탁에는 마트에서 구입한 싱싱한 아보카도를 넣은 샐러드가 이미 올라와 있었다.
골드코스트에서는 총 4일의 시간을 보냈다. 15년째 골드코스트에 거주하고 계시다는 J의 이모님과 이모부님은 골드코스트에 오기 전 방콕에서 3년 정도 지냈다고 하셨다. 방콕에 4년째 거주하고 있는 나와 같은 해외 교민으로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두 분의 정착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분은 대학시절 일어와 영어를 전공하셔서, 졸업 후 가이드를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모부님의 일 때문에 온 가족이 방콕에서 3년 정도 거주하셨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때의 방콕과 지금의 방콕이 많이 달라졌다는 나의 이야기에 연신 감탄을 하셨다. “어머 방콕에 지상철이랑 지하철이 생겼니?”, “아니, 그 백화점이 없어졌단 말이야?”, “태국어를 열심히 배웠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이모부님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우면, 이모님과 어린 두 딸이 집을 지켜야 했는데 밤만 되면 ‘투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 소리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고, 소리는 너무 커서 매일 밤 무서워하는 딸들을 달래며 지내곤 했는데, 후에 그것이 야자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20년 전의 방콕에는 야자나무가 곳곳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방콕에서 3년을 거주하다 이사 온 곳이 바로 이곳 호주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다짐을 했다고 했다. 두 분의 나이가 우리의 부모님보다도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참 대단한 용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님은 친척의 도움으로 시드니에서 지내며 여러 회사로 이력서를 보냈고, 그것이 골드코스트로 연이 닿았다. 골드코스트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던 이모부님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던 이모님을 골드코스트로 불렀다. 그저 한번 둘러보기 위해 골드코스트에 왔지만, 생활력 강한 이모님은 일본인 면세점에 붙은 구인광고를 보고 그 길로 면접을 봐 합격을 했다. 그 당시에는 골드코스트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기에 일본어와 영어를 잘하는 이모님을 일본인 사장은 마음에 쏙 들어 했다. 한국에 가서 이삿짐을 정리해 들어오고,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민 1세대로 15년을 치열하게 살며 정착의 꿈을 이뤄냈다. 이모님은 아직도 여러 상점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성실히 일하고 계신다. 두 분은 여행을 참 좋아하신다. 몇 년 전에는 캐러밴을 빌려 뉴질랜드를 한 달 여행하셨고, 작년에는 두어 달쯤 유럽으로 캐러밴 여행을 계획했는데, 큰딸의 결혼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야. 우리 소유의 집 한 칸도 없잖아. 하지만 그 대신 여행을 많이 다녔고, 골드코스트에서 재미있게 잘 지냈지. 아이들도 다 시집 보냈고 얼마 전에 드디어 영주권도 나왔어. 이제 더 이상 욕심 없어.” 두 분의 검소하고 단정한 모습과 생활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낯선 나라에서 정착하며 겪었을 무수히 많은 어려움들이 느껴졌지만, 고요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 얻어진 선물일 것이다.
November 2015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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