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놀이공원 :: THERE
AROUND,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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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놀이공원
아주 오래된 놀이공원
모두가 웃고 있던 곳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지
슈만의 꿈
아빠 어깨에 목마를 타고
시우타데야 공원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이지만 특별한 시설이 있는 곳은 아니다. 넓은 잔디밭에 사람들이 아무데나 늘어져 누워있고, 대충 놓인 탁구대에서 웃통을 벗고 탁구를 하는, 나도 언젠가 저 틈에 끼어서 동양의 탁구 실력을 뽐내줘야겠다고 늘 생각만 하며 지나가곤 했던 평범한 공원이다. 그 공원이 요 며칠 축제를 여는 동안 조금 특별하게 변신했다.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 에디터 이현아
바르셀로나는 사시사철 날씨가 맑고 쾌청한 도시이지만, 그날은 유난히 햇살이 좋았다. 카메라를 하나 챙겨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에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개성 넘치는 푸드 트럭에서 팟타이, 햄버거, 훈제 스테이크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잔디밭 위에 늘어지려다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아주 옛날식 놀이공원이었다. 놀이기구는 작았고,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움직였다. 모두 무료라 누구든 줄만 서면 탈 수 있었다. 철판을 두드려 만든 것 같은 낡은 회전목마에 아이들이 타면, 한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목마를 돌렸다. 그 옆 사격 놀이 기구의 총알은 귀엽게도 올리브였다. 발 옆에 올리브가 가득 든 통이 있고, 아이들은 기다란 나무 총 앞에 서서 올리브를 오물오물 먹고 남은 씨를 뱉어 총에 장전했다. 올리브 씨가 허공을 날아 과녁을 맞히면 어른도 아이도 깔깔 웃었다. 한쪽에선 아빠와 아들이 자전거 대결을 하고 있었다.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 엄지손가락만 한 모형 자전거가 대신 달리는 놀이기구다. 아빠는 슬렁슬렁 발을 구르고 아들은 온 힘을 다했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경기 시작 전 아빠의 토닥이던 손길을 거부하던 사춘기 아들은 자전거 경주에서 이기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 듯 아빠와 얼굴을 마주 보고 씨익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래된 놀이 기구에 매혹되어 구석구석 살펴보고, 나도 모르게 자전거 대결에 몰입해 응원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들도 엄마들도 아빠들도 모두 웃고 있었다. 햇살마저도 환하게 웃고 있던 오후, 나도 커다랗게 웃었다.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조금 그런 기분이었을 뿐이었다.
저만치에 관람차가 보였다. 보통 놀이공원의 대관람차처럼 규모가 크지 않고 아주 작았다. 여덟 명이 정원인데 관람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작은 칠판을 하나씩 목에 걸고 있다. 옹기종기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에도 같은 칠판이 걸려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이름과 함께 ‘17’, ‘21’과 같은 숫자가 쓰여 있다. 대기번호인 줄 알았던 숫자는 알고 보니 몸무게였다. 아이들은 관람차에 타기 전 체중계 위에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가 “린다.”, “페드로.”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관람차에 앉았다. 관람차 역시 다른 놀이기구와 마찬가지로 수동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의자에 앉으면 몸무게에 따라 각기 무게가 다른 추를 바꿔 달았다. 그리고 역시나 한 아이의 부모가 나서 손잡이를 돌리면 비로소 관람차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돌릴라치면 아이들은 “빨리요, 좀 더 빨리!” 목소리 높여 조잘거렸고, 체중을 실어 팔을 돌리던 엄마는 깔깔 웃으며 힘을 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놀이기구는 애초에 어른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흔들 침대에 엄마나 아빠가 누우면 아이들은 그 앞에 마주 앉아서 부채가 연결된 줄을 당기는 아주 단순한 기구.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누워있는 엄마와 그 앞에서 신이 난 듯 줄을 당겨 부채질하는 아이. 엄마도 아이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을, 예상 못 한 종류의 즐거움이 주변 공기를 채웠다. 아이도 엄마도 아닌 나는 그 공기 속에서 엄마가 되고 싶기도 아이가 되고 싶기도 했다.
오래전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공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고풍스러운 공연장의 크지 않은 무대에는 까만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고국인 러시아에 돌아온,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백발의 호로비츠가 몸을 숙이고 앉아 느릿느릿하게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연주하는 곡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한 곡이었는데, 아주 평화로운 멜로디였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온 신경을 집중해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어느새 아이도 울고 어른도 울었다. 몰두한 표정 위로 흐르는 눈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꿈’이란 뜻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그 곡은 나에게 듣고 제목을 알아맞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클래식 음악이 되었다. 햇살 속에 천천히 돌아가는 관람차를 보는데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귓가를 스쳤다. 잘못 들었나 했는데, 실제로 공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곡이 흐르고 있었다. 느닷없이 눈물이 났다. 당황스러웠지만 햇살이 아주 눈이 부신 날이라 선글라스 사이로 흐른 눈물은 뺨에 닿기도 전에 말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꿈 같아. 꿈속에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었다. 꿈 같다거나 동화 속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흔하게 봤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낀건 처음이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그 아주 오래된 놀이공원을 거닐며 아이가 되기도, 어른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되면 웃었고 어른이 되면 울었다.
어떤 기억은 자극을 받아야 떠올려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기억을 건드릴 자극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해 슈만이 작곡했다는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햇살 덕에 눈을 갸름하게 뜨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관람차를 보고 있으니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빛처럼 쏟아졌다. 나의 기억 속에는 아빠 어깨에서 목마를 타고 고궁을 걷던 장면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빠 어깨높이보다 키가 커지는 사이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 기억 속에서 걸어 나온 어린 나는 지금의 나에게 그 시절, 참 좋았다고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훌쩍 나이 든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잊고 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어 고맙다고 속삭였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로했고, 우리는 화해했다. 싸우지 않아도 화해할 수도 있구나, 나는 햇살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오랜만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나의 어른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어서 시우타데야 공원으로 오라고. 꿈속 같은 곳이, 동화 같은 곳이 있다고. 친구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을 데리고 공원으로 달려왔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일주일간의 축제가 끝났고, 다시 찾은 시우타데야 공원의 놀이기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텅 빈 잔디밭에는 평소처럼 사람들이 드러누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있다. 꿈이었나 싶지만, 아무렴 어때, 꿈이었어도 괜찮지 싶다.
December 2015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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