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 THERE
AROUND,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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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3의 여행
유혹하는 이름
여행의 규칙
낯선 사람의 호의
결코 다시는
짝이 맞지 않는다. 기차를 타면 나란히 앉지 못하고 방을 잡아도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 한다. 평소에는 두 발을 딛고 선 세모처럼 안정감을 자랑하는 숫자 ‘3’이지만 여행에선 그렇지 못하다. 세 사람 사이의 추억과 내적인 친밀감을 자꾸 재면서 선택의 순간마다 불안함을 불쑥 들이밀어 사람 못나게 하는 것이 여행의 ‘3’이다. 다행히 우리 사이에 더해진 한 명은 번번이 따로 앉고 바닥에서 자야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걷기는 커녕 할 줄 아는 동작은 뒤집기 뿐이고 `우우` 외에는 소리내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아기와 함께하는 첫 여행이었다. 아기에게서 시작된 고약한 눈병은 우리가 가족임을 증명하듯 모두에게 옮겨왔고 그로인해 지독했던 한달을 보낸 후였다. 하루는 아기의 생체리듬에 따라 흘러갔다. 우리는 세 번의 식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만 아기는 하루 다섯 번, 두 종류의 밥을 먹고 그에 맞춰 기저귀를 갈아야했다. 여행의 속도는 자연스레 느려졌다. 글 김자영 사진 김자영, 이진주 에디터 이현아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 eld의 작품집에서 커다랗고 완벽에 가까운 대칭의 계단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발을 디딜 수 없는 이상향이 거기 있었다. 계단, 복원, 박물관, 치퍼필드. 가보지 않은 베를린을 나는 십년이 넘도록 이렇게 기억했다. 어딘가 가고싶다는 마음은 생각과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에서 시작되곤 한다. 사진을 바라보던 눈의 초점은 점점 흐려져 뿌옇게 변했다. 작고 좁은 내 상상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공간을 만들어낸 시작이 궁금해졌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Spree 강에는 박물관 섬 Museuminsel이 있다. 강에떠있는긴섬위에큼직한박물관이다섯개나모여있는것이다.강과 섬이라는두개의단어가더해져여행안의여행을꿈꾸게하는이곳에신 박물관Neues Museum이 있다. ‘예술과 과학을 위한 안식처’를 원했던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바람에 따라 무려 12년에 걸쳐지어진 이 박물관은 나치 독일의 수도가 베를린이었던 탓에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건물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구동독 시절엔 응급처치만 이루어진채 방치되었다. 1997년 영국의 건축가인 데이비드 치퍼필드와 줄리안 하라프 Julian Harrap 는 신 박물관 복원을 위한 국제현상설계에 당선 되었고 거의 11년이 지난 2009년, 신 박물관의 세 번째 복원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방이 이어졌다. 그렇게 문에서 문으로 바닥과 벽, 천장을 읽으며 걸어나갔다. 반짝이는 것이 없었다. 나를 멈추게 했던 십 년 전의 흑백 계획안을 떠올렸다. 그것 역시 반짝이지 않았다. 새로운 선과 재료는 파괴된 공간의 곳곳을 조용하고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거의 못 느낄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시선을 사로 잡았던 것은 공간도 재료도 아닌, 폐허를 견뎌낸 시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만들어낸 분위기 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인생사의 번잡함과 관계없이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듯 박물관은 담담했다. 아시아에서는 치퍼필드의 작업을 쉽게 만날 수 없기에 좀 더 구석구석 거닐고 싶었지만 관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그리운것이 또 하나 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외국어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에만 말이다. 짧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이 박물관의 이름을 얼마나 오래도록 혼잣말로 웅얼거렸는지 모른다. 늦은 밤 가방에 넣어두었던 안내서를 꺼내 뜻을 다 알수없는 문장을 아기에게 들려주었다. 읽는 나도 모르는 말들을 아기가 알아 들을리 없으니 아기도 나도 외계어를 접하고 있는 셈이지만 말이다. 여행의 규칙 여행에는 저마다의 규칙이있다. 신랑과 내가 결혼 후 4년간 함께한 여행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침마다 가고싶은 카페가 숙소 근처에 있을 것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무조건 식당에 갈 것 두 가지 이다. 전자는 나를 위한 것이고 후자는 빵과 초콜릿을 주식으로 삼는 나를 견디지 못한 신랑의 화를 반영한 것이다. 여행가이드에서 카페를 찾아보니 베를린 지도가 분홍색 핀으로 가득찼다. 이정도면 어느 동네에서 잠을 자더라도 훌륭한 카페는 바로 옆에 있을 수 밖에 없을 터이니 나를 위한 계획은 더는 필요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어디에 가건 마음에 드는 카페가 근처에 있었고 왜 이 시간에 카페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내 또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지만 멍하니 사람 구경을 하며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하나 늘었으니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었다. 아기에겐 유모차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켤 시간이 필요했다. 신랑과 나의 두팔을 목적없이 허공에서 흔들 수 있는 가볍고 자유로운 시간도 필요했다. 이 커다란 도시는 크고 작은 공원을 곳곳에 품고 있었다. 잔디와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달려가 우리도 청춘인 양 신을 벗고 드러누워 초여름의 가벼운 공기를 즐겼다. 비록 부양가족이 생겼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위로와 함께. 낯선 사람의 호의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반갑다. 베를린에서도 우연히 지인을 만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사이가 더 가까워 질 수 없었던 이유가 모습을 드러낸다. 불편하다 외치던 마음의 소리를 몸이 들었는지 내키지 않던 식사 자리가 끝날 무렵 탈이나고 말았다. 걷지도 눕지도 울지도 못한 채 한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취소하고 싶던 약속, 다섯번은 틀린 길 찾기, 원하지 않았던 식사, 어리둥절한 합석과 망설여지던 마지막 물 한잔. 이 정도 면 경고는 충분했던 셈이다. 출국을 이틀 앞둔 저녁 벌어진 일이었다. 외진 곳이었고 지나가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길 끝에 바이올린을 든 소녀와 엄마가 보였다. 몸을 웅크린 채 걸어간 나는 그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우리의 베를린이 좋지 않게 기억될까봐 조바심이 난 사람처럼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시간이 아까운 나의 마음을 안다는 듯 서툰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말하며 차를 몰았다. 손이 저릿한 기분과 함께 온기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고 다 잊어버렸던, 베를린에서 한번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홉살 난 딸은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했다. 독일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는 대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지인이 위와 장에 좋다며 추천한 하얀 국화가 그려진 차를 연거푸 마시며 하루를 꼼짝없이 방에만 있었다. 일정 없는 하루였다. 창밖으로 빼곡한 숲과 동물원의 오랑우탄 서너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고 이따금 까만새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방은 6층인데 20층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내려다보였다.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이상한 도시의 스케일 이었다. 결코 다시는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사고였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자정 넘어 도착한 베를린 공항에 유모차가 도착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편한 곳에 놓아두면 알아서 챙기겠다던 유독 친절했던 금발의 스튜어디스 얼굴이 떠올랐다. 이틀이 지나 간신히 찾은 유모차는 햇빛가리개를 잃은 채 였다.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동안 아기의 얼굴은 발갛게 익어갔지만 결국 가리개를 찾을 순 없었다.서울에 돌아올때는 한 시간씩 한 시간씩 이륙이 지연되어 열시간을 공항에 머물렀다. 마침내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의 사건은 없을 것이라는 기도와 같은 나의 안도감과 함께 아기 바구니에 누운 아기는 긴 잠에 들었다. 아기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은 우리도 큰 숙제를 끝낸 듯한 마음으로 서로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나의 여행은 늘 비슷하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엔 여전히 설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행지에서는 그날 그날의 계획에 따라 크기를 달리 접은 지도를 너덜너덜 찢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낮에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느라 밤에는 오늘 거닐었던 길이 어디였는지 눈으로 쫓느라 지도만 그렇게 본다. 같은 길을 수 없이 걸어 발이 익을 즈음이면 그제야 시간이 모자라 못가본 곳들을 아쉬워하며 좀 덜 걸었어야 했다고 한숨을 내쉰다. 셋이라고 여행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나는 아직 제 힘으로 걷지 못하니 골목을 지나는 속도 가느려졌고 종종 쉬어가며 도시의 벽을 좀 더 구경할 수 있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사이라 해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에겐 독일어와 치퍼필드로 기억된 베를린이 신랑에겐 낡음과 청춘의 도시이다. 아기에겐 어떤 추억으로 남았을지 아직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웃고 안겨 놀았던 것을 보면 즐거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방이 이어졌다. 그렇게 문에서 문으로 바닥과 벽, 천장을 읽으며 걸어나갔다. 반짝이는 것이 없었다. 나를 멈추게 했던 십 년 전의 흑백 계획안을 떠올렸다. 그것 역시 반짝이지 않았다. 새로운 선과 재료는 파괴된 공간의 곳곳을 조용하고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거의 못 느낄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시선을 사로 잡았던 것은 공간도 재료도 아닌, 폐허를 견뎌낸 시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만들어낸 분위기 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인생사의 번잡함과 관계없이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듯 박물관은 담담했다. 아시아에서는 치퍼필드의 작업을 쉽게 만날 수 없기에 좀 더 구석구석 거닐고 싶었지만 관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그리운것이 또 하나 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외국어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에만 말이다. 짧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이 박물관의 이름을 얼마나 오래도록 혼잣말로 웅얼거렸는지 모른다. 늦은 밤 가방에 넣어두었던 안내서를 꺼내 뜻을 다 알수없는 문장을 아기에게 들려주었다. 읽는 나도 모르는 말들을 아기가 알아 들을리 없으니 아기도 나도 외계어를 접하고 있는 셈이지만 말이다.
여행에는 저마다의 규칙이있다. 신랑과 내가 결혼 후 4년간 함께한 여행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침마다 가고싶은 카페가 숙소 근처에 있을 것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무조건 식당에 갈 것 두 가지 이다. 전자는 나를 위한 것이고 후자는 빵과 초콜릿을 주식으로 삼는 나를 견디지 못한 신랑의 화를 반영한 것이다. 여행가이드에서 카페를 찾아보니 베를린 지도가 분홍색 핀으로 가득찼다. 이정도면 어느 동네에서 잠을 자더라도 훌륭한 카페는 바로 옆에 있을 수 밖에 없을 터이니 나를 위한 계획은 더는 필요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어디에 가건 마음에 드는 카페가 근처에 있었고 왜 이 시간에 카페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내 또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지만 멍하니 사람 구경을 하며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하나 늘었으니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었다. 아기에겐 유모차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켤 시간이 필요했다. 신랑과 나의 두팔을 목적없이 허공에서 흔들 수 있는 가볍고 자유로운 시간도 필요했다. 이 커다란 도시는 크고 작은 공원을 곳곳에 품고 있었다. 잔디와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달려가 우리도 청춘인 양 신을 벗고 드러누워 초여름의 가벼운 공기를 즐겼다. 비록 부양가족이 생겼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위로와 함께.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반갑다. 베를린에서도 우연히 지인을 만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사이가 더 가까워 질 수 없었던 이유가 모습을 드러낸다. 불편하다 외치던 마음의 소리를 몸이 들었는지 내키지 않던 식사 자리가 끝날 무렵 탈이나고 말았다. 걷지도 눕지도 울지도 못한 채 한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취소하고 싶던 약속, 다섯번은 틀린 길 찾기, 원하지 않았던 식사, 어리둥절한 합석과 망설여지던 마지막 물 한잔. 이 정도 면 경고는 충분했던 셈이다. 출국을 이틀 앞둔 저녁 벌어진 일이었다. 외진 곳이었고 지나가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길 끝에 바이올린을 든 소녀와 엄마가 보였다. 몸을 웅크린 채 걸어간 나는 그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우리의 베를린이 좋지 않게 기억될까봐 조바심이 난 사람처럼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시간이 아까운 나의 마음을 안다는 듯 서툰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말하며 차를 몰았다. 손이 저릿한 기분과 함께 온기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고 다 잊어버렸던, 베를린에서 한번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홉살 난 딸은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했다. 독일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는 대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지인이 위와 장에 좋다며 추천한 하얀 국화가 그려진 차를 연거푸 마시며 하루를 꼼짝없이 방에만 있었다. 일정 없는 하루였다. 창밖으로 빼곡한 숲과 동물원의 오랑우탄 서너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고 이따금 까만새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방은 6층인데 20층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내려다보였다.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이상한 도시의 스케일 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사고였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자정 넘어 도착한 베를린 공항에 유모차가 도착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편한 곳에 놓아두면 알아서 챙기겠다던 유독 친절했던 금발의 스튜어디스 얼굴이 떠올랐다. 이틀이 지나 간신히 찾은 유모차는 햇빛가리개를 잃은 채 였다.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동안 아기의 얼굴은 발갛게 익어갔지만 결국 가리개를 찾을 순 없었다.서울에 돌아올때는 한 시간씩 한 시간씩 이륙이 지연되어 열시간을 공항에 머물렀다. 마침내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의 사건은 없을 것이라는 기도와 같은 나의 안도감과 함께 아기 바구니에 누운 아기는 긴 잠에 들었다. 아기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은 우리도 큰 숙제를 끝낸 듯한 마음으로 서로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나의 여행은 늘 비슷하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엔 여전히 설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행지에서는 그날 그날의 계획에 따라 크기를 달리 접은 지도를 너덜너덜 찢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낮에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느라 밤에는 오늘 거닐었던 길이 어디였는지 눈으로 쫓느라 지도만 그렇게 본다. 같은 길을 수 없이 걸어 발이 익을 즈음이면 그제야 시간이 모자라 못가본 곳들을 아쉬워하며 좀 덜 걸었어야 했다고 한숨을 내쉰다. 셋이라고 여행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나는 아직 제 힘으로 걷지 못하니 골목을 지나는 속도 가느려졌고 종종 쉬어가며 도시의 벽을 좀 더 구경할 수 있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사이라 해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에겐 독일어와 치퍼필드로 기억된 베를린이 신랑에겐 낡음과 청춘의 도시이다. 아기에겐 어떤 추억으로 남았을지 아직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웃고 안겨 놀았던 것을 보면 즐거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April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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