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맛 :: THERE
AROUND,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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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맛
태국의 맛
팍치 이슈
여러 가지 맛의 태국
태국의 특별한 식탁
80년 전통의 아메리칸 블랙 퍼스트 온 록 윤 On Lok Yun
소박한 태국 가정식, 유이 엄마의 집 반 매 유이 Ban Mae Yui
태국과 이탈리아가 만나다. 어나더 하운드 Another Hound
태국에서 먹는 인도음식. 로띠 마따바 Roti Mataba
태국의 음식은 오묘하다. 한입 먹으면, 입안 가득 물음표가 채워진다. 맵고 달고 짜고 시고. 온갖 자극적인 맛이 나면서도 때로는 부드럽다. 결국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러 가지 맛’. 이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맛’은 바로 태국 자체다. 태국은 다양한 민족들이 한데 어울려 살고,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곳이 마치 다른 나라의 분위기를 풍긴다. 태국은 다양한 맛을 내는 나라다. 글·사진 김주영 에디터 정혜미
어렸을 때부터 카레도 입에 안 댈 정도로 향신료가 강한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태국에 정착하기로 했을 때,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음식에 관한 문제였다. 어느 곳에서나 음식은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태국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기본 인사말 다음으로 살기 위해 외웠던 문장이 바로 “마이 사이 팍치(팍치를 빼주세요).” 팍치를 먹는 건 타협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 향이 얼마나 강한지, 요리에서 팍치를 빼달라고 하더라도 그 오묘한 식물과 함께 보관되어 있던 다른 채소에까지 그 향이 배서 숟가락을 몇 번 들다가도 내려놓았고, 어쩌다 작은 잎 한두 장이 요리에 섞여 들어가면 예민한 후각이 귀신같이 알아채 먹을 수가 없었다. 태국생활 초창기, 지인을 따라 북부 치앙라이Chiang Rai 지역의 한 커피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시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여서 호텔은커녕 게스트하우스도 없어 현지인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호스트가 귀한 손님이 왔다며 우리를 위해 한 상 거하게 차려주었다. 문제는 모든 음식에 팍치가 아주 듬뿍 들어있었다는 것. 게다가 방콕 시내에서 먹던 팍치보다 향이 엄청나게 강한, 그야말로 야생 팍치였다. 하지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준 안주인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눈 딱 감고 열심히 접시를 비웠다. 태국 이민의 첫 신고식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뒤로 팍치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도저히 적응되지 않을 것 같았던 팍치 향에 많이 무뎌진 것을 보니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팍치를 현지인처럼 잘 먹게 될 때쯤이면 “이제 완전 태국 사람 다 됐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년이 지난 지금, 음식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김치찌개가 생각날 때면 똠얌꿍(태국식 새우 수프)을 먹고, 부침개가 먹고 싶으면 어쑤언(태국식 굴전)을 찾고, 불고기 덮밥 대신 팟카파오 무쌉(돼지고기 바질 덮밥)을 먹는다. 신기한 점은 어떤 한국 음식도 대체할 만한 태국 요리가 존재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태국 여행의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음식을 떠올릴 만큼 태국 음식은 중독적이다. 아니, 나에겐 오묘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요리 안에 눈에 보이는 재료를 비롯해 타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수많은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각자의 맛을 낸다. 이를 ‘여러 가지 맛’이 아니면 무엇이라 표현하랴. 또한 태국의 음식문화는 주변 국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도의 영향을 받은 각종 카레 요리가 대표적. 북인도에서 구워 먹는 빵인 로티Roti는 현지인들에게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간식이 되었다. 미얀마에서 영향을 받은 치앙마이 지방 음식들, 말레이시아의 치킨 덮밥 같은 카우만까이Kaumankai와 국수 요리 락사Laksa, 중국식 찐빵 빠오즈 또는 왕 만두와 비슷한 살라빠오Salapao도 태국인의 인기 간식 중 하나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일본음식점은 태국음식점만큼이나 그 숫자가 많고, 서양식 레스토랑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한류의 붐 영향으로 한국음식점도 많이 오픈하는 추세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맛’을 내는 태국의 음식은 태국 그 자체와도 같다. 타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살고, 한 골목이 국가의 경계선인듯 양쪽에 각각 다른 나라의 분위기를 풍기는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강한 향신료에도 불구하고 태국음식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태국음식점을 찾는 것쯤이야 우스울 정도다. 한국만 해도 최근에 많은 태국음식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양인들의 아시안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태국음식은 그들이 가장 열광하는 음식 중 하나인 것 같다. 반면 길거리에서 파는 30바트짜리 쌀국수부터 몇백 바트에 달하는 해외 요리까지 음식의 반경이 굉장히 넓은 태국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다. 태국 여행 시 굳이 모든 끼니를 태국음식으로 채울 필요가 없다. 이곳은 전 세계의 맛을 전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먹을 것이 다양하다.
방콕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 차이나타운은 방콕의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아주 큰 도매 상가가 있어 필요한 물품을 살 때 종종 방문하는 곳이다. 어느 날 차이나타운에서 주렁주렁 물건을 사고 나오는데 함께 갔던 태국인 친구가 “브런치나 먹으러 갈까?”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이 근처에 핫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오래된 차이니즈Chinese 식당이었다. 80년 동안 타이식 아메리칸 블랙 퍼스트를 만든 ‘온 록 윤On Lok Yun’은 80년 전 식당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매우 오래된 가게인데도 드레스 업한 많은 태국의 하이소(상류층)들이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어 무언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태국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오래된 가게이니만큼 방콕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빵과 에그 커스터드가 함께 나오는 카놈빵 상카야Kanompang Sangkaya와 타이스타일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는 온 록 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카페의 주인이자 3대째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할머니는 아직도 카운터에 앉아 찻주전자를 정성스럽게 닦으며 손님들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주신다. 할머니에게 오래된 가게의 느낌이 좋다고 말을 붙였더니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살갑게 대답해 주셨다. ‘80년이나 된 가게’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는 모습에서 가게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근처의 올드 타운을 천천히 걸어보거나 ‘사란 롬 공원Suan Sranrom’을 산책하기를 추천한다. 높은 빌딩과 쇼핑센터가 즐비한 다운 타운과는 확연히 다른 방콕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이 엄마의 음식 솜씨가 얼마나 뛰어나길래, 아리Ari의 후미진 골목에 있는 유이 엄마 식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식당 이름인 ‘반 매 유이Ban Mae Yui’는 ‘유이 엄마의 집’ 이라는 뜻이다. 알록달록 컬러풀한 식당 테이블과 의자들이 딱 태국스럽다. 에어콘도 없고 여기저기 선풍기만 돌아가지만 큰 파라솔이 머리 위를 덮고 있어서 더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옆 테이블을 둘러보니 모두 외국인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아니라 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음식 맛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흔한 태국음식점에서 먹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성이 느껴지는 태국 ‘집밥’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반 매 유이가 붙어있는 바로 옆의 큰 저택이 바로 유이 엄마의 진짜 집이라고. 원래는 그냥 평범한 작은 집이었는데 식당이 인기가 많아져서 저택으로 탈바꿈했다는 소문도 있다. 태국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말이 달라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반 매 유이의 음료수나 식재료가 방콕의 유명 백화점에도 납품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없는 말은 아닌 듯 하다. 소박하고 다정한 태국의 가정식을 찾는다면 추천하는 식당이다.
‘그레이 하운드Grey Hound’는 미니멀한 디자인이 특징인 태국의 대표적인 의류 브랜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편집숍에서 종종 만나볼 수 있으며, 태국 여행 시 그레이 하운드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1997년 그레이 하운드는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론칭해 현재는 태국에 7개, 홍콩의 3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 타이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어나더 하운드Another Hound’를 론칭했다. 어떤 면에서 태국음식은 이탈리안 음식과도 매우 비슷하다. 토마토를 식재료로 충실하게 사용하는 것과 월계수나 바질잎을 이용한 음식이 많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탈리안과 태국 요리를 혼합하면 아주 특별한 스타일의 음식이 탄생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퓨전요리’를 넘어선 새로운 음식들이다. 최근 태국의 음식 트렌드는 타이 이탈리안이다. 겉보기에는 이탈리안 음식 같지만 조리법을 달리해 태국음식과 이탈리안 음식의 그 중간쯤의 음식을 내어온다. 느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깔끔한 음식을 맛볼 수 있기에 방콕에도 타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빠른 속도로 생기는 추세. 어나더 하운드 엠포리엄Emphorium 백화점 지점은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인테리어가 매우 아름답다. 태국의 트렌디한 음식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향신료가 과하게 들어간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삼겹살 구울 때 후추를 치는 것도 싫어하고, 시나몬이 잔뜩 들어간 카푸치노나 시나몬 롤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카레 종류는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교 때 점심에 카레가 나오면 밥도 먹지 않고 매점으로 달려갈 정도였으니까.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그린 커리나 레드 커리도 일부러 찾아먹지 않을 만큼 아직까지 향신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태국인 친구가 ‘로띠 마따바Roti Mataba’라는 인도 음식점에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었을 때, 정말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억지로 따라나섰다. 사실 로띠 마따바는 이미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한 음식점이지만, 굳이 한 번 더 이곳을 소개하는 이유는 인도 음식을 싫어하는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국에는 인도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인도인에 의해 길거리 식당으로 처음 문을 연 것이 로띠 마따바다. 1984년, 현재의 위치인 ‘프라아팃Phra Athit’ 2층에 다시 오픈한 이래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허름한 2층 식당은 에어컨도 잘 작동되지 않고, 좁은 테이블에 서로의 어깨가 닿을 만큼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좁은 골목을 따라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로띠 마따바’. 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와 고기로 소를 채워 노릇하게 구워낸 요리로 쇠고기, 닭고기, 생선, 해산물, 채소, 바나나, 버섯 중 선택할 수 있다. 소고기 마사만Massaman 커리(무슬림 스타일의 커리)와 치킨 그린 커리, 중동스타일의 캑 샐러드Khaek Salad도 인기다. 가격이 저렴해 푸짐하게 시켜도 부담스럽지 않다.
April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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