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개들 :: THERE
AROUND, M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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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개들
바르셀로나의 개들
두 마리의 개에서 시작된 이야기
개와 산다는 것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
그리고 나의 개
사 년째 고양이와 살고 있다. 개를 키운 적은 없다.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양이에 비하면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 는다고도 생각했다. “개는 너무 사람을 따라. 맹목적으로 나 를 따르는 존재는 조금 부담스럽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개를 만나면서 나도 어느 시절 개를 키운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때 나의 개였던 ‘승리’에 게 몹시 미안해서 나는 글을 쓰며 몇 번이나 멈추어야 했다.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 에디터 이현아
몇년 전 남미를 여행했다. 작년에는 그 이야기를 엮어 책을 한 권 냈다. 제목은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회사에 다니며 바빴던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후, 시간이 많아져 생긴 일을 담았다. 여행기라기 보다는 어쩌면 남미를 배경으로 한 백수 일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책제목에 대해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은 그건 여행지에서 쓴 일기 제목이었다. 과테말라 안티과Antigua에서 장을 봐 숙소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길 건너에 큰 개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한국에서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장면이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않고, 큰 개는 어쩐지 무서우며, 결정적으로 우리는 보통 바빴을 테니까. 하지만 안티과에서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개 한마리가 조금 다쳤다는 걸 알아차렸다. 성큼 길을 건너 가까이 다가가 장바구니 안에 있던 소시지를 잘라서 주었다. 그리고 두 녀석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뿐이었다. 아주 천천히 흘렀던 짧은 시간. ‘시간 이 많으니까 참 좋구나.’ 중얼거리다가, 나는 우리 여행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름 모를 두마리의 개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그때부터 거리의 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큰 개는 조금 무서워서 여전히 거리를 두긴 했지만, 길에 개가 있는 풍경이 더는 낯설지 않았다.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서 살았다. 제주에도 주인 없는 개가 많았다. 그 개들은 자꾸 농약을 먹고 죽었다. 매일 동네를 지나다니던 백구가 어젯밤 농약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에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문앞에 내놓은 고양이 밥을 뺏어 먹는다고 나무랐던게 미안해서, 종일 백구 뒤를 쫓아다니던 작은 개 누렁이가 가여워서 울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내가 알게된 개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었다.
처음에 바르셀로나에 와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풍경은 가게 입구에 앉아있는 개들이었다. 그들은 가게 안에서 볼일을 보고있는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있었다. 각자의 주인이 데려온 크고 작은 여러 마리의 개들이 나란히 한 방향을 향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가게 안에 함께 들어가는 개도 흔하고, 함께 진열대 사이를 거닐며 물건을 고르는 일도 드물지 않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공원이나 거리, 광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데, 그때마다 항상 개와 함께 나가 시간을 보낸다. 식당에 갈때도, 슈퍼에 장을 보러 갈때도, 개와 함께한다. 그건 개를 환영하는 가게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식당이 개와 함께 갈 수 있는지, 어느 슈퍼마켓 입구에 개를 묶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이들은 아주 잘 알고있다. 그래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얼굴을 익히기 전에 개 이름을 먼저 외우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같은 층에 사는 남자는 늘 얼룩 무늬 개 ‘버드’와 함께 외출하는데, 나는 아직 그 남자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멀리서 봐도 버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는 친구는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오가며 길에서 종종 마주치는데, 한번도 혼자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멀리서 개의 뒤 꽁무니만 보고 알아보고 “끼요!” 하고 달려가 얼굴을 비비다 보면 비로소 끼요 옆에 서있는 친구가 보인다. 이처럼 이 곳에서는 개와 사람을 따로 생각하기가 어렵다. 이사람과 저사람이 부부인걸 아는 것처럼, 이 사람과 저 아이가 엄마와 딸 사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저 개와 이 사람이 한집에 산다는 걸 대부분의 이웃은 알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개는 집 안에 있고, 가끔 ‘정해진 산 책 시간’ 동안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주인들은 대부분 산책 복장을 하고 있었다. 또, 큰 개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만 키우는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큰 개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대신 산책을 아주 자주 시킨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는 배경을 바꾸니 당연하지 않아졌다. 이곳에서 당연한 것은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개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바르셀로나에 와서 알았다. 거리에서 사람을 보고 짖는 개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손짓을 하면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고, 다가가 예쁘다 쓰다듬으면 주인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바르셀로나의 개들은 산책을 자주하고 훈련이 잘되어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적어도 저 개가 나를 해치거나 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때부터 거리의 모든 개가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 활기를 더해주는 이 순한 아이들을 예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딱 한번 개를 키워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잊으려고 노력한 이름, 승리. 승리는 우리집에 아주 짧게 살았다. 부모님은 모두 아침 일찍 출근했고, 동생과 나도 약속이 많아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승리는 낮 동안 주로 집에 혼자 있었다. 장난기가 아주 많던 닥스훈트였다. 어느날 나는 승리를 내방에 두고 문을 닫고 외출했다. 오랜만에 일찍 집에 왔는데, 승리는 방안에 오줌과 똥을 싸고는 그 위에 앉아있었다. 방문을 열고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펑펑 울었다.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마침 엄마 옆에는 이모가 있었다. 우리는 승리를 키우기에 너무 바쁜 것 같다고, 울며 말했고 나와 엄마, 그리고 옆에 있던 이모까지 셋은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울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모가 승리를 데려갔다. 승리와 함께 지내며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리와 함께 산책한 기억이 없다. 전혀 없다. 어쩌면 개를 키워본적 없던 무지했던 우리 가족은 승리와 함께 산책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이 한번 떠오르고 나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작은 강아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바르셀로나에 살며 거리에서 매일 승리를 만난다. 제주의 개 백구도 만나고, 안티과에서 본 두마리의 개도 만난다. 어떤 개는 바르셀로나에 태어나서 매일매일 골목과 공원을 산책하며 이웃들에게 이름을 불리고, 어떤 개는남미에서 태어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떤 개는 제주에서 태어나 농약을 먹고 죽고, 어떤 개는 서울에서 태어나 집안에서만 산다. 승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산책을 아주 많이 다녔으면, 이름이 자주 불렸으면, 친구도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다.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개를 만날 수 있는 이곳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주문을 외우듯 그런 생각을 한다.
May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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