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작은 공간들 :: THERE
AROUND,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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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작은 공간들
치앙마이의 작은 공간들
INTERVIEW : 지버리쉬 자카샵 Jibeerish Zakkashop
INTERVIEW : 준준카페 Jun Jun Cafe
INTERVIEW : 아워 홈 라이브러리 Our Home Library
치앙마이에는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각자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하나 하나 정성 들여 옷을 만드는 엄마와 그 옷을 직접 염색하는 딸이 운영하는 자카샵 ‘지버리쉬Jibber- ish’, 안전하고 편리한 방콕의 삶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가 문을 연 ‘준준 카페Jun Jun Café’, 집 앞마당에 조금 큰 서재를 짓게 되어, 홈스쿨링 중인 세 딸에 의해 운영되는 무료도서관 ‘아워 홈 라이브러리 Our Home Library’. 그들은 생활이 충분할 만큼 돈을 벌고 있는지 걱정 어린 질문을 하는 내게, 한결같이 “많지는 않지만 충분하다”라고 답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대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사진 김주영 에디터 정혜미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집 앞에서 작은 자카샵을 운영하는 ‘낫’이에요. 직접 만든 패브릭 제품 들과 여행지에서 수집해온 작은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엄마는 핸드메이드로 옷을 만들고, 저는 완성된 옷을 직접 인디고로 염색하죠. 지버리쉬는 저와 엄마, 그리고 제 남자친구 ‘비’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에요. 아, 다섯 마리의 고양이도 있고요. 지버리쉬를 운영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태국의 한 잡지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아트 디렉터로 일했어요.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일의 특성상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지루한 생활들이었죠. 그곳에서 2년 정도 일했는데, 그것이 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생활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우연히 일본인이 운영하는 자카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자카’라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굉장히 새로웠고 제 취향에도 딱 맞았죠. 그래서 일본으로 자주 여행을 갔어요. 두 세 달에 한번씩. 일본을 여행하면서 포푸리나잼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도시와 농촌생활의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본인 들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자카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일하던 자카샵에서는 스탬프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했는데, 태국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이어서 그것에 푹 빠져버렸죠. 남자친구의 손 재주가 아주 좋아서 그에게 도움을 받아 스탬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태국에는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의 잉크 패드만 있었는데 비 덕분에 다양한 컬러의 패드도 만들 수 있었어요. 그것들을 가지고 지버리쉬를 열게 된거죠. 많은 사람들이 그 스탬프를 좋아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방콕에서 열린 한 페어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어요. 생각보다 제 스탬프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 때 고객 중 아직까지 제 물건을 좋아하고 구입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은 어머니가 만든 옷을 직접 염색해서 판매하고 있다고요?  저는 엄마가 옷을 잘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제 옷을 만들어주었죠. 제 몸에 꼭 맞는 예쁜 옷이었지만, 저는 그 옷들이 너무 싫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미키마우스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나 원피스를 입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옷들을 싫어했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 고향에 갔는데, 고향 사람들이 제가 입었던 옷을 기억하는 거에요. 그 옷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죠. 그래서 수린Surin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엄마를 치앙마이로 모셔와서 함께 일 을 시작한 거죠.
엄마와 함께 일하면서 다툼은 없었나요?  처음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에는 다툼이 많았어요. 둘 다 독립적이고 성격이 비슷해서 자주 부딪혔죠. 그렇지만 엄마가 만든 옷은 정말 잘 팔렸어요. 스탬프로 지버리쉬를 알렸다면 엄마가 만든 옷으로 저희 브랜드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죠. 엄마는 꼼꼼하신 분이라 만들어진 옷의 품질이 정말 좋았어요. 온라인에 제품을 올리면 순식간에 팔렸어요. 다행히도 엄마는 이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었죠. 사실 저희 부모님은 5년 전에 이혼을 하시고, 엄마는 수린에서 혼자 외롭게 지냈었는데 옷을 만들고 팔기 시작하면서 치앙마이에서 저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시장에 가면 엄마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요. 엄마는 신기해하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죠. 지금은 이 일을 시작한 것을 잘했다고 여기고 있어요. 지버리쉬의 물건들은 주로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엄마가 만든 옷을 비롯해 비가 만드는 에나멜 액세서리, 인디고로 염색한 패브릭 제품 등 60퍼센트이상이 직접 만든 물건들이에요. 나머지 40퍼센 트는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모은 제품들이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신기하게도 지금 태국의 트렌드는 다시 전통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수공예나 슬로우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죠. 그것이 단순한 유행이라 할지라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이 흐름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러한 삶 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기 마련이거든요. 태국에서는 의복, 음식, 집, 의료, 이 네 가지를 삶의 기본적 요소라고 생각하죠. 가능하다면 이것들을 전부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어요. 현재는 남자친구와 제가 살고있는 집과 인디고 염색 작업장, 그리고 가게 공간만 사용하고 있는데, 외지에서 온 친구들을 위한 집을 따로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서 야채도 키우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누고 싶고요. 엄마는 수린에 있을 때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일하셨어요. 아빠와 이혼하면서 더욱 힘든 삶을 사셨죠. 하지만 치앙마이에 온 이후로는 엄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여동생까지 치앙마이로 왔어요. 가끔 마사지나 쇼핑도 즐기시게 되었고요. 앞으로도 엄마가 이렇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준준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준’이라고 해요. 옆에는 제 남자친구이자 파트너인 ‘차’예요. 저희는 치앙마이의 시내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카페를 운영해요. 컵케이크도 팔고 가게 한 켠에서는 문구와 소품도 판매 하고 있어요. 치앙마이에서 태어나서 쭉 이곳에서 살았나요?  저는 치앙마이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고등학교 때는 건축학교에 다녔어요. 그리고 희망하던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방콕으로 홀로 유학을 떠났죠. 대학 졸업 후, 방콕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약 6년간 일했어요. 방콕은 태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만큼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한 도시죠. 하지만 늘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저는 편리한 방콕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인 치앙마이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어요. 차는 어떻게 치앙마이로 오게 되었나요?  남자친구인 차는 같은 직장에서 만났어요. 그는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였는데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제가 치앙마이로 돌아올 때쯤, 그는 포토그래퍼란 직업을 포기하고 저를 따라 치앙마이로 왔어요. 순전히 저를 믿고 치앙마이로 와주었고 현재는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직장에서 일로서 사진을 찍을 때보다 지금의 삶을 더 좋아하고 있어요. 착한 어린이였군요. 항상 가족들을 돕고 있었네요.  제가 특별히 착했던 것은 아니었어요(웃음). 그저 그렇게 일손을 거드는 것이 놀이의 한 방법이었죠. 가게에 작고 예쁜 제품들이 참 많은데,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궁금해요.  저는 문구점을 정말 좋아했어요. 거창한 물건을 사는 건 아니었지만 문구점에서 파는 작은 필기도구, 봉투, 스티커 등 팬시한 것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죠. 방콕에서 제품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역시 많은 제품들을 보러 다녔죠. 이런 여러 경험들과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얻는 영감들이 모여서 지금의 가게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지금 당신의 삶을 이해해주나요?  사실 엄마는 지금의 저의 삶을 좋아하지만,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저를 걱정할 때도 있어요. 엄마는 제가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시지만, 저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방콕에서의 생활보다는 훨씬 적게 벌고 적게 쓰지만 행복하게 살고있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사실 카페 2층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도로가 너무 시끄러워서 포기했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이 동네에 게스트하우스를 꼭 만들고 싶어요. 치앙마이는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원래 있던 치앙마이스러운 모습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죠. 이곳에 거주 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어요. 저희는 계속 치앙마이다운 느린 삶을 살며, 원래의 것들을 잘 지키고 싶어요.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엄마 챙, 아빠 버이, 첫째 딸 세이(16), 둘째 딸 세리(13), 셋째 딸 픽씨(9)인 다섯 명의 가족이에요. 저희는 치앙마이의 시내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항 동지역에서 ‘아워 홈 라이브러리’란 무료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세 마리의 강아지와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고 있죠. 어떻게 무료 도서관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는 저희 집을 지을 당시, 마당에 가족서재를 만들려고 했어요. 세명의 딸들이 모두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가 처 음의 계획보다 더 크게 무료 도서관을 만들기로 결정했죠. 도서관의 책들은 모두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80퍼센트 이상은 저희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이에요.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죠. 그리고 도서관의 개관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기증을 해주었어요. 대부분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이고, 마케팅, 아트, 크래프트에 관련 된 잡지도 있어요. 세이와 세리, 픽씨는 모두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요?  세이 : 어렸을 적에 학교를 좀 다니다가 지금은 홈스쿨링을 하고 있어요. 저는 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수업 시간표는 스스로 짜서 생활하고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직접 부딪혀봐요. 잼이나 수공예품을 만든 후, 직접 시장조사를 하고 타겟을 정해서 판매도 해보고 있어요. 책을 통해보는 것만이 아닌 현장감을 익히기 위해서요. 세리 : 저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지만, 주로 도서관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책을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엄마 : 막내인 픽씨는 나이는 어리지만 활동적인 아이라 야외활동을 좋아해요. 오늘도 인터뷰가 있다고 말해두었는데 놀러 나가버렸어요(웃음). 세이나 세리 또래의 소녀들은 연예인이나 K-POP에 관심이 많잖아요.  세이 :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어요. 대신 밖에서 자전거 타기나 하이킹, 여행을 더 좋아해요. 내년에 여행을 떠날 계획이어서 열심히 판매 아이템을 선정해서 리서치하고 있는 중이에요. 돈을 모으려고요. 자매끼리 사이는 좋나요?  세이 : 셋 다 사이가 좋은 편이에요. 저는 동생들과 자주 싸우지 않는데, 픽씨와 세리는 싸우기도 하죠. 주로 대화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많이 다퉈요. 무료도서관 운영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있나요?  엄마 : 땅은 저희 엄마에게 물려받은 거예요. 집 앞마당에 만든 도서관이기 때문에 따로 집세가 들어가진 않죠. 책도 소장하고 있던 것이라 비용이 많이 들진 않았어요. 기타 비용은 도서관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카페의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카페는 딸들이 전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앞으로 어떤 도서관을 꿈꾸고 있나요?  이곳은 도서관이지만 저희 집이기도 해요. 진짜 도서관 같은 딱딱한 분위기를 원하지 않아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하길 바라고, 놀면서 독서를 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가족들이 함께 도서관에 방문하기란 참 어렵잖아요. 저희 도서관에는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카페와 도서관의 문을 연지도 얼마 안되었고, 홍보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앞으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홈스테이도 운영할 계획이에요.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머무르면서 무료 워크숍 프로그램 등을 열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 동네는 주로 현지인들이 살고있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고있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서 다양한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July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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