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파타야 :: THERE
AROUND,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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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타야
생각의 파타야
떠남에 대하여
머무름에 대하여
돌아옴에 대하여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꽤나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태국 파타야의 여러 장소를 다녔고, 그 중 일부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떠나고 머무르며 돌아올 때 까지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 노력했다. 충실히 바라볼 것, 감정에 솔직할 것, 구체성을 가질 것. 여행에서 돌아와 한참 후 사진을 정리하며 나는 그날 만났던 풍경과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기로 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 취재협조 프라이빗라벨
파타야의 한 호텔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마침 마감을 막 끝낸 참이었고, 부족한 잠을 미뤄둔채 부랴부랴 짐을 꾸렸다. 여행자의 배낭 무게는 전생의 업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말을 단단하게 믿는 편이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몇시간 전까지 짐을 줄이는 일에만 몰두해 결국 책가방 하나의 무게로 3박 5일간의 전생을 미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인천에서 떠난 비행기가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에 가까웠다. 방콕은 예의 후텁지근한 밤의 열기로 이방인을 반겼다. 원래대로라면 택시를 흥정해 시내로 이동했을 테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몇 몇 낯선 얼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했다. 12인승 승합차에 올라 방콕 외곽도로를 달리길 두 시간여, 파타야 남쪽 어딘가에 위치한 커다란 호텔에 도착했다. 묘하게 달라진 시차 때문인지 그저 멍한 상태로 한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천장이 높은 로비와 고가의 장식품, 기어코 짐을 들어주겠다는 짐꾼과 영어가 능숙한 데스크 직원들이 상주하는 곳. 단출한 가방 하나만 지고 떠나온 나는 짐짓 모든게 익숙한 풍경인양 어색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사실 나에게 파타야는 실재하는 장소라기보단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상상 속 이름에 가까웠다. ‘환락과 유흥’, ‘식상한 휴양지’, ‘더러워진 바다’ 같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이미지가 강했다. 짐을 꾸리고 공항에 도착해 이륙을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가슴이 뛰지 않았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떠나기 전부터 돌아옴을 기다리는 여행이라니. 그런 힘없는 생각을 하며 객실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타원형으로 휘어지는 태국 특유의 억양이 들려왔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되는’ 어떤 순간의 일이었다. 늦은 밤이었고,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어쩐지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훈풍이 불어오는 테라스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밤. 그제야 내가 살고있던 곳으로부터 조금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우리는 승합차에 올라 파타야 남쪽 일대를 돌았다. 설명을 듣자하니 호텔이 있던 곳은 파타야의 중심가, 밤과 환락의 문화로 소문난 일명 ‘워킹 스트리트’와는 거리가 있는 나좀티엔na jomtien 지역이었다. 그러니까 파타야를 떠올릴 때 내가 들었던 비밀스러운 이미지들은 도시를 한쪽 면으로만 바라본 사람들의 말인 셈이었다. ‘카툰 네트워크Cartoon network’의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워터파크와 녹색의 단정한 골프장을 돌아볼때 그 곳은 차라리 덜 개발된 조용한 시골 휴양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배를 타고 ‘꼬 사메산KohSaeme San’이라는 낯선 섬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어린왕자》 속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섬은 태국 군인들이 관리하는 곳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듣던대로 투명한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첫 번째 발자국을 기다리며 여행자를 맞이했다. 바다와 모래가 깨끗해 스노클링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잤다. 누워만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였지만 이따금 바람이 불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그러다 누군가 섬 반대편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고 말했고, 나는 홀리듯 일어나 짐을 챙겼다. 앳된 얼굴의 군인이 버스를 운전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길 얼마쯤, 툭 툭, 숲 속에서 튀어나오는 자전거 여행자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 섬 곳곳을 탐험하는 사람들. 아마 그들은 우리보다 느려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하며 나는 남국의 풍경들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고요함과 나른함.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크게 하품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풍경이었다. 물론 파타야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감상이 허풍처럼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같은 곳에 머무르면서도 다른 기억을 쌓아서 돌아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모두 다 옳다.
다시 돌아와 호텔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지금보다 조금 더 달리기를 잘하던 시절의 나는 배낭여행을 좋아했다. 길고 커다란, 아주 납작한 배낭을 메고 몇 킬로미터씩 걸어 다녀도 끄떡없던 때였다. 일명 ‘10불 생활자’라는 이름으로 살며 먹는것과 자는것,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모든 비용을 하루 만원 안에서 해결했다. 저렴한 로컬 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웬만한 고가의 체험들은 모두 건너뛰는, 그야말로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여행이었다. ‘낮은 곳에서 허우적대는게 진짜 여행이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처음에 호텔 초대를 받고 조금 망설인 것도 사실이었다. ‘별이 다섯 개’라는 나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규모의 여행을 앞두고 괜한 부담이 앞섰던 거였다. 하지만 막상 호텔에 머무르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훌륭한 아침 식사, 깨끗한 수영장, 초콜릿 만찬, 객실 어디에서나 바다를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 같은 요소들은 이미 그들이 자랑하는 ‘파타야 최고의 호텔’의 명성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런것보다 내가 좋았던 것은 그 화려한면면 뒤쪽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었다. 저녁을 준비하기 전 레스토랑 한편에서 삼삼오오 수다를 떠는 직원들은 모두가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낯선 사람의 요청에도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그리며 웃어주었다. 확신컨대 그건 어떤 의무감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었다. 후에 호텔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마음에 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다른 사람이 대신 대답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다시 한 번 주방에 들러 그들과 인사했는데, 그들은 마치 또 만날 사람처럼 환하게 웃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에 머무는 지금, “아직도 낮은 곳에 머무는 것만 이 진짜 여행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약간은 그렇다.”라고 대답 할 것 같다. 다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여행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됐다. 잠을 청하는 침대의 상태나 한 끼 식사를 위해 지출하는 돈의 범위 같은 것들은 확실히 여행의 진위를 가리는데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방식이 어떻든 떠나고 머무는 것, 다시 돌아옴에 기쁨을 느끼는 마음들 모두가 유랑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행을 잘하는 방법 같은 건 말하지 못한다. 이미 많은 사람 들이 어제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았을테고, 그것 또한 오래지 않아 유통 기한 지난 옛날 정보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이런 건 이야기할 수 있겠다. 4월의 맑음, 그 날의 팽팽했던 태양, 볕을 안고 자란 커다란 나무의 무늬, 그늘과 그림자, 먼저 인사를 건네면 손을 모아 웃어주는 마음, 둥글고 상냥한 표정들 모두. 그런 것들을 떠올리자 이번 여행 역시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모벤픽시암호텔파타야 55 Moo 2, Na Jomtien, Sattajip, Chonburi, 20250 Pattaya H. movenpick.com +66 33 078 888
July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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