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에서의 나날들 :: THERE
AROUND,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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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에서의 나날들
류블랴나에서의 나날들
Ljubljana in S"LOVE"NIA, 사랑의 도시
닷새 동안의 긴 하루
어느 시인의 초상
‘류블랴나’라는 단어 안에는 강가에 늘어선 카페의 새 하얀 외벽에 닿는 지중해의 햇살이 있고, 낡았지만 낡은 대로 잘 보존된 성이 있으며, 특유의 여유와 낭만-이것을 사랑에 대한 재능이라 불러도 좋겠다-이 있다. 류블랴나라는 단어를 알게 된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류블랴나의 한낮 숙소 근처의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일만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걸. 글 김종연 사진 이훈호 에디터 김건태
사랑에 빠져 지낸다는 건 사랑에 빠져 죽을수도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오래도록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귓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내 심장이 매 순간 뛰고있다는걸 알려주던 사랑. 그러나 누구나 다 안다. 그 심장은 어느날 갑자기 멈추고 만다는 걸. 그리고 다시는 뛰지 않는다는 걸. 죽은 건 내가 아니라 사랑일 뿐인데, 마치 내가 죽어버린 듯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게는 지금이었다. 류블랴나를 행선지로 정한 건 순전히 그 이름 때문이었다. 류블랴나. 율리안 알프스의 동쪽 끝 슬로베니아의 수도. 인구가 30만명도 채 되지 않을만큼 작지만, 발칸 반도의 천성적인 무뚝뚝함과는 다르게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다. 류블랴나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동안 옆에 앉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 생각될만큼 나는 말 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건 도심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슬로베니아SLOVENIA 속 ‘LOVE’라는 단어가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인 듯 거리마다 사랑을 강조하는 간판과 표지판들이 세워져 있었고, 현지인이라면 누구도 머무르지 않을 그 단어 앞에서 나는 매번 발길을 멈추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류블랴나에는 흔히 보던 트램이 없었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많았다. 마음은 이미 거리에 가 있었기에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와 먼저 걷고있던 마음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도시 전체가 노을에 물들고 있었다. 거리에 깔리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상점들의 외벽에 닿기 시작했을 무렵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갈만한 자리가 없었다. 마치 심장의 중심에서 외곽을 찾아온 것처럼 이제 나의 등 뒤에서 뛰기 시작하는 류블랴나의 심장이 나를 다시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에 나의 심장을 온전히 맡겨두기로 했다. 내 사랑 또한 중심에서 출발해 밖으로 향하는 과정이었고, 바깥에 앉아 저 중심을 한참 동안 망연히 바라보는 게 전부였으므로, 내게 기거할 자리를 내어주는 숙소와 이제 막 불밝힌 류블랴나 성이, 나를 부르는 이 모든 광경이, 끝날 줄 알고도 다시 돌아가게 되는 사랑인 것만 같았다. 류블랴나의 어원이 슬로베니아어 ‘사랑스럽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나의 어원 또한 당신의 이름을 닮았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밤이었고, 깊 었기에, 환절기인 만큼 나의 기억 역시도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
류블랴나는 보통 하루 일정의 여행지다. 도시가 좁고 높은 건물을 찾기 힘든만큼 류블랴나 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류블랴나의 모든 모습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 숙소에서 닷새를 보냈다. 닷새를 묵게된 데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저 가능한 여러날들 중 닷새가 좋았을 뿐이었다. 그 중 첫날은 류블랴나에 도착해 걷는 일만으로, 둘째날과 셋째날은 숙소 앞 펍에 나가 생맥주를 시켜놓고 도시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만으로 흘려보냈다. 맥주가 물보다 싼 이곳은 내게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머리가 희끗한 펍 주인 남자는 낯선 곳에서 내리 맥주만 마셔대는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맥주를 시킬 때마다 몇 마디 말을 얹어주었으며-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나중에는 한 잔에 2유로 짜리 생맥주를 네 잔에 6유로로 깎아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도심의 낮과 밤, 펍의 외관과 화장실, 숙소가 기억의 전부였다. 특히 계속 마시는 맥주 덕분에 화장실은 점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집과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넷째 날부터의 기억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류블랴나 성이 있어 어디에서든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내 방위를 확인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성 언덕 아래로 류블랴니차Ljubljanica 강이 흐르고 강 옆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누어져 있었다. 강가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낯선 곳에 와 있었다는 실감이 났을 것이었다. 게다가 노란 개나리는 이제 ‘어떤’ 기억을 환기하게 한다. 가끔은 아름다움이 풍경을 깨뜨리는 균열이 되곤 한다. 하지만 류블랴나의 거리는 중세시대의 오래된 건물과 비교적 덜 낡은 건물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1895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폐허가 된 자리에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을 건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걸 얹는 일, 마치 아주 오래된 고서의 문장을 퇴고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이토록 멋지게 해내고 있었다. 한 계절에서 한 계절로 건너가는 류블랴나는 좀처럼 햇빛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긴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빛 같아서 사람을 멍하게 만들곤 했다. 류블랴나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자살에 실패하고 정신병동에 갇힌 베로니카의 삶과 코엘료의 문장은 지금의 날씨처럼 잿빛이었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고 온 거리에 햇살이 들기 시작한 류블랴나는 ‘초록’이라는 색 자체였다. 완연한 봄이었으며 페이지가 넘어가듯 금세 달라진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새로운 삶이라도 시작된 듯 했 다. 류블랴니차 강 주변의 수목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 근교의 우거진 숲은 류블랴나의 계절이 애초부터 봄으로 설계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의 계절은 아직 겨울이었기에, 입고있던 어두운 코트 안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쌀쌀했다. 난생 처음 겪어본 이국에서의 환절이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외풍이 드는 듯하여 더욱 깃을 여밀수 밖에 없었다.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걷다보면 모양이 똑같은 삼중교Tromostovje, Triple Bridge를 만나게 되고, 그 중 하나를 골라 건너가면 프레셰렌Preseren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프레셰렌 광장의 중심엔 슬로베니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시인 ‘프란체 프레셰렌’의 동상이 있다. 슬로베니아의 국가 ‘축배’는 그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되었으며, 그가 죽은 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을 만큼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부유한 상인의 딸인 줄리아를 사랑했고, 그 시절의 사랑 이야기가 흔히 그렇듯 두 사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고 더 나아가 슬로베니아의 비극이었기에 이곳의 시민들은 그 비극이 더욱 아름답길 바랐다. 그들의 사랑을 이루어주기로, 아니 위로해주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프레셰렌 동상의 슬픈 시선을 따라 걷다보면 줄리아가 생전에 살았던 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고, 바로 그곳에 그토록 원하던 사랑, 줄리아의 동상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사랑은 낭만이 되지 못하고 낭만주의가 된다. 낭만주의에는 낭만이 없고 사랑도 없다. 다시 쓸 수 없는 실패만이 가득할 뿐이다. 프레셰렌은 낭만주의 시인이 되었다. 그의 낭만이 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며, 동시에 어떤 한 남자의 실패가 다음 시대의 성공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열렬했던 시간에서 멀어질수록 추억하지 말자고 되뇌게 되지만 기억은 스스로 잊히기 전엔 사람을 떠나지 않는 것이기에, 어느날엔 가는 내 기억인지 아닌지도 모를 슬픔에 사로잡혀 울수도 웃을 수도 있는 시간을 온몸으로 온전히 받아내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럴땐 어떤 위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저 끝나기 위해 시작되는 문장이었을 따름이다. 아주 오래전 한 용사가 류블랴나에 살고있던 용을 물리치고 처음으로 마을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은 강에 용의 다리Dragon Bridge를 짓고 류블랴나의 밤을 온통 용의 상징인 녹색으로 빛나게 했다고 한다. 길가에 앉아 류블랴나 성을 보는 동안 마침 정각을 알리는 성 니콜라스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저 언덕 너머 이름모를 성당의 종소리도 여기까지 들려온다. 서로 다른 구원의 종소리가 엇박자로 울리고 있는 이 낭만의 도시에서, 나를 끝내 낭만주의로 만들려는 시절을 지나 단 하나의 낭만이 되어보기 위해 써보는 문장들은 결국 실패를 닮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있고 당신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 정도면 괜찮다. 어차피 낭만은 나의 기억이 아닐것 이므로. 이 시대는 조금 아프겠지만 나의 기억에서 잊힐수 있겠으므로. 마음의 일교차가 크다. 긴 환절이 끝나가고 있다.
July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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