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폐허에서의 나날들 :: THERE
AROUND,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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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허에서의 나날들
아름다운 폐허에서의 나날들
국경을 지나서
당신의 꿈을 내가 꾸는 밤
앙코르에서 쓰는 편지
누구에게나 이른 삶이 있다
여행하기에 좋은 곳은 세상에 참 많지만 앙코르 유적만큼이나 여행자들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폐허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번 여행은 내 안에도 하나쯤 있을 폐허를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찾아오는 이 없어도 그 폐허에 꽃 한 송이 꽂아두고 돌아오자는 마음이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당신이 언제까지나 아름답길 바라면서. 글 김종연 사진 이훈호 에디터 김건태
국경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국경을 넘는다. 나의 국경은 당신이었지만 당신의 국경은 내가 되지 못했다. 내가 그 국경을 넘어 어릴적 주로 가던 골목이나 좋아하는 색과 어린 여자 아이들의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취미들을 향해 새벽 열차를 타는 동안 당신은 나를 지나쳐 저 언덕 너머 오래도록 꿈꿔온 미래와 희망을 향해 갔다. 여행을 오래하다보면 한 곳에 오래도록 살면서 한생 전부를 방랑하는 사람들만의 깊은 표정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나는 거울 앞에서서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된다. 언젠가 내가 당신의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나는 점점 못나졌다. 그때마다 내 얼굴에서도 깊은 방랑이 떠오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한참을 외로웠다. 얼굴을 씻어내도 씻기지 않는 얼굴이 있다. 국경에 멈춘 열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다 본 비디오 테이프를 다시 돌리듯 국경에서 도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자주 다시 마주쳤다. 이미 여러번 만났던 사람처럼 가볍게 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며 다시 만날것이란 기대로 운명을 믿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이번 생에서는 아직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캄보디아에서의 두번째 밤이다. 새벽부터 오후 내내 툭툭을 타고 모든 유적들을 보고 다녔다. 서로 이름도 비슷한 유적 사이를 다니다보니 공간감각도 많이 무뎌졌고 나중에는 유적을 보기보단 유적안을 걸어보는, 유적 안에서 잠시 살아보는 일에 더 많은 마음을 쓰게 되었다. 언젠가 기억보다 망각에 더 가까운 여행을 떠나야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예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건 바로 이곳 앙코르유적이었다. 아마 그즈음 보았던 영화 화양연화 속 양조위와 장만옥의 눈빛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끈게 아닐까 싶었다. 사랑을 잃고 이제 이별까지 잃어야만 하는 순간, 앙코르와트의 수많은 구멍 중 하나에 비밀을 속삭여 숨겨두고 영영 그곳을 떠나버린 양조위처럼 화양연화의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걷던 앙코르와트는.... 얼마 걷지 못하고 음악을 끄고 말았다. 얼마 전 앙코르 유적의 보수공사를 중국이 맡게 되면서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낭만을 찾기란 중국집에서 스테이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는 탕수육이나 깐풍기도 좋아하지만. 그러나 다행히도 마지막 일정이었던 톰마논의 정상에 누워 바라본 일몰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내가 누운 자리부터 그늘이 지고 모든 바깥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이 삶이 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의심까지 하게 될 정도였으니. 이 기억만으로도 나는 여기에 몇번이고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침 기분좋게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고, 툭툭 기사였던 미스터 툼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스피커에 휴대폰을 연결해 김광석과 김현식, 유재하의 노래를 들으며 빗속을 달렸다. 덕분에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약간의 몸살 기운이 느껴져 일찍 잠들수 있었다. 두시간 정도를 자다가 깼다. 꿈을 꾸었다. 꿈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네가 나왔다. 너는 어느 봄날의 공원을 헤매고 있었고 나는 너를 피해 간신히 들키지 않을 만큼만 숨어다녔다. 조금 더 극적인 순간에, 조금 더 놀라울 순간에 나타나기 위해 숨어다니다보니 금방 어두워져버렸고 이번에는 내가 너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한참을 찾아다니다 포기하고 돌아본 곳에 네가 있었다. 너는 이 상황이 너무 믿기지 않는 듯 당황했고 그 놀랍고 당혹스러운 표정은.... 그래, 네가 내 꿈에 나온게 아니라 내가 네 꿈에 나온 것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놀라고 말았구나. 이 밤이 양초라도 되는 듯 맥주 캔을 부딪치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숙소 마당이 소란스럽다. 다음날 일정을 앞두고 당혹스럽게 잠이 안오는 상황을 대비해 낮에 구비해둔 맥주 몇 캔을 들고 저 무리에 섞어들까 생각하다 이내 접고 만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저 곳에서 술을 나누기엔 듣는 만큼의 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 바깥이 너무 더워 물을 줄줄 흘리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시원한 에어컨 밑에 앉아 들어보는 저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라디오 같다. 맞는 주파수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맥주 한 캔을 마시다가 내려놓는다. 혼자 마시는 술은 낭만적이지만 쉽게 외로워진다. 네가 여기에 왔다면 밤새 술을 마시다 잠들었겠지. 그리곤 아주 늦게 일어나 해가 진다고, 그러면 네 가사는 곳에는 해가 뜨고 있는 거라고, 이제 우리는 아침이라고 밖으로 나가 한참을 목적지도 없이 걷다가 들어오겠지. 바깥에서는 술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건배를 외치는 듯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조용히 건배, 한다. 씻을 수건이 다 떨어진 척 자연스럽게 그들 옆에 앉아 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본다. 밤이 깊다.
우리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기분이 듭니다. 내가 당신이었던 적이 있던가요. 당신은 불꺼진 번화가에 마지막 등불을 켜고 앉은 노점 주인으로도 살았고, 어떤 삶에서는 저녁마다 동네 술꾼들의 슬픔을 받아주는 선술집의 넉살 좋은 주인으로도 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울음이 많은 골목에서 태어나 울음이 많겠지요. 울음을 참느라 웃음을 배웠겠지요. 당신과 함께 한바탕 웃고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말은 통하지 않지만 삶은 같으니까요. 저는 여기 처음 와봅니다. 당신 또한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으니 긴 처음으로 살고 있겠지요. 지난번은 어땠습니까. 다음은 또 어떨 것이고 요. 자전거에 사탕수수를 싣고 달려본 삶도 있겠지요. 어느 시대에서는 저 유적에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몇 년을 앓는 사람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마주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지요. 가족들은 아픈데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까. 아프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잘 지냅니다. 줄곧 떠나고 잊지 못해 되돌아옵니다. 자주 떠나고 있으니 아마 다음 삶 정도에는 떠나지 못할거란 예감이 듭니다. 그러면 그때 당신 잠시 내가 되어 살아주고 있겠습니까. 내가 먼 생을 돌아 당신 앞에 와 쪼그려 앉으면 끊은 담배 한 대 같이 태워주겠습니까. 그때 같이 한바탕 웃으며 이런 편지 한 장 남겨주겠습니까. 사람은, 서로 닮았으니까요.
새벽부터 짐을 싸서 공항으로 가려는데 숙소의 주인 남자가 너무 이르다며 말을 건다. 출발까지 두 시간밖에 남지 않은 비행 편이라고 얘기하는데도 아직 너무 이르니 식사부터 하라며 막무가내다. 내가 떠나려는 뜻을 굽히지 않자 손가락 하나를 펴보인다. 한시간. 한시간만 더 있다가 출발해도 늦지 않단다. 그리고는 캐리어를 낚아채더니 카운터 앞에 가져다 두고 식탁을 보며 식사하는 시늉을 한다. 이쯤되면 앉아야지 별수가 없다. 조금 기다리자 계란 프라이 두개와 커리향이 나는 밥 조금, 우유 한 잔이 나온다. 눈 앞에 갓 만든 식사를 두니 금세 식욕이 돈다. 이 숙소는 체크인 할 때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일단 조금씩 크고 작은 방의 가격이 모두 똑같이 저렴했고, 특이하게도 다른 숙소와는 달리 무료 조식 서비스가 있었다. 주인 남자는 그것이 자부심인 듯이 건 무료다, 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강조했는데 그 말이 ‘조식을 먹지 않으 면 숙소를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었을 줄이야. 급하게 식사를 하는데 머그 잔한 가득 뜨거운 커피가 나온다. 눈앞이 그만 깜깜하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뒤에 캐리어부터 챙겨 주방에 크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연착이다. 주인 남자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딱 한시간. 그러고 보니 게이트에 현지인같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부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다. 웃음이 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연착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있고, 그곳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하루가 더 길어서 여유롭게 살수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그 나라가 바로 여기 있었다. 이제야 주인 남자의 고집이, 그가 펼쳐보인 손가락 하나가, 무료라던 아침 식사 한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겠다. 이 삶은 내게 연착되었다, 하고 오래전 공책에 적어둔 적이 있었다. 오래도록 떠나지도 못하고 떠날 생각에만 사로잡혀 지내던 나날이었고 오래 기다렸기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두고 떠나버린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리는 기차의 창문에 스치는 풍경들 처럼 내가 그들을 두고 달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던 날이었다. 말하자면 내 여행은 내가 지나친 풍경들을 되감는 작업인 셈이다. 처음부터 다시 보기 위해서, 내 모든 후회를 다시 마주하고 최선으로 아프기 위해서. 그러니 아직 너무 늦은 연착이란 없다. 한시간, 주인 남자의 말처럼 주어진 삶을 다 쓰고도 우리에게는 항상 그만큼의 시간이 더 남아있을 것이므로. 그 사라지지 않는 한시간이 우리를 모두 담고도 남을만큼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이곳에 와 여유분의 삶을 얻고 떠난다. 이제 떠나지만, 다시 돌아올거란 예감이 든다. 그때는 주인 남자와 이웃하여 밤새 이야기하다 잠들어도 피곤하지 않겠다. 아무리 늦게 출발해도 언제나 이르겠다.
July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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