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시선 :: THERE
AROUND, Augu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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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시선
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시선
대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동네의 모습은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뛰어 놀던 골목은 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선지 오래고, 좋아하는 가게는 주인이 바뀌어 새로운 인테리어로 단장해버리기 일쑤다. 너무나도 빠른 변화에 지쳐있던 어느 날, 여전히 중세 시대의 모습들을 간직해오고 있는, 프랑스 중서부에 위치한 ‘푸아티에’에 오게 됐다. 그리고, 옛 모습과 현대식 삶이 자연 스럽게 섞여 있는 이곳에서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보았다. 글·사진 이연우 에디터 이자연
옛이야기가 살아있는 곳, 푸아티에
6개월 전, 나는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프랑스로 여행을 왔다. 아직 밟아보지 못한 땅에 대한 기대와 숱하게 들어온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고,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늘 살아왔던 대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 프랑스 중서부 지방에 있는 아담 한 도시 푸아티에에서 지내기로 결심했다.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온 곳 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곳에서의 첫날은 역시 ‘어안이 벙벙’ 했다. 고층 빌딩과 회색 유리로 뒤덮인 곳에서, 마차가 지나다닐 것 같은 곳으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마을 중심가를 걸어 들어오면(마을 중심지는 차 출입이 한정되어 있다)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에서나 볼 법한 중세시대 건물들이 가득하다. 그 건물들에는 장사를 하거나 웃고 즐기고 이따금 울기도 하는,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오간다. 역사가 있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우리는 한옥에서 ‘살기’는커녕,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한옥마을에 나가야 겨우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고치고, 시대의 취향을 덧대며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그 안에 담고 있었다. 역사의 무게를 지닌 건물에 사는 것은 방음이 잘 안되는 벽,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리모델링에 관한 까다로운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보수 하고, 아껴줘야 하며 존중해야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을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박았을 각기 다른 모양의 벽돌들 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고, 차가 없던 시절 말을 묶어두던 쇠고랑이 아직 남아,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시간을 품고있는 건물들은 우리가 있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을 기억하는 듯한 웅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지금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 하나엔 익숙함이 묻어나 여유가 느껴지고, 이 모든게 새로운 나는 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오래된 것, 삶이 되는 것
이러한 ‘옛 것’에 대한 사랑은 건물을 보존해오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토요일이 되면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에 마켓이 들어선다. 마켓에는 싱싱한 채소와 침샘을 돋우는 다양한 음식들도 있지만, 골동품이나 옛 서적, 잡지, 음반, 가구들도 늘 접할 수 있다. 이중 새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은 없다. 모두 먼지가 푹푹 쌓여있는 옛 물건들이다. 그리고 이곳에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들도, 반짝거리는 새 가방을 들고 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가죽가방이나 천 가방에 자신이 구매한 물건을 담는다. 그들의 물건들은 심하게 헐고 낡은 것들도 많지만, 시간이 주는 기품, 그리고 옛 물건에서나 볼 수 있는 특유의 정교함이 주는 무게가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 삶의 큰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빈티지’만의 독특한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한때 유행이 기도했지만, 그건 한 시기 혹은 한정된 사람들의 취향일 뿐, 이렇게 사회적으로 사람들 삶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늘 새로운 물건이 가득하고,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벅찬 한국의 모습과는 굉장히 상반된다. 왜 이런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오래된 것’의 어떤 면을 ‘이어갈 가치’로 여기는 것일까. 얼마 전 프랑스인 친구 마틸드가 일주일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며 함께 지내자고 날 초대했다. 프랑스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는 게 처음이었던 터라 여러 기대를 하고 있었고, 그녀 가족 역시 프랑스 혁명 이전에 지어졌던 오래된 집에 살고 있어서 평소 궁금했던 점에 대해 그녀의 가족에게 물었다. “푸아티에를 보면 굉장히 오래된 건물들에서 사람들이 아직 살아 가고있잖아.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오래된 건물에서 사는게 편한 것만은 아닌데도 계속 이것들을 보존해나가는 힘이 뭐라고 생각해? 물건들도 마찬가지고. 너희 집에도 너보다 나이가 많은 물건들이 많잖아.” 이 질문을 들은 그들은 무척 당황해했다. 단 한번도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도, 생각을 깊이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게 여러 답을 주었다. “물론,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더 아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것들은 우리 역사의 산물이라는거야. 우린 과거를 잊으면 미래도 없는거라고 생각을 해. 그 생각이 바탕이 돼서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리고 굳이 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새로운 것이 나왔거나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바꿔버리는 ‘미국’스러운 삶을 살고 싶진 않아.” ‘미국’스럽다는 친구의 표현이 정확히 무엇일까 생각해 봤더니, 아마도 소비 문화가 활발하고 회전이 빠른 미국 사회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이어 말했다. “우리는 향수 때문에 남겨두는 것 같기도 해. 예부터 내려오는 건물들을 보면 우리 눈엔 매우 예쁘고 아름다워. 그건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주기도 해. 우리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그런것들을 지키는 건 당연한거야.”
우리가 품어온 이야기
‘편리함’과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에서 살다 보니 ‘향수’와 ‘아름다움’이 지켜야 할 큰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왠지 낯설었다. 많은 이가 마음에 들어 한다고 그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니. 어릴 적부터 있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다시 짓는 모습만 수백차례 봐왔던 내겐 조금 더디더라도 옛 것을 고쳐가며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견고해 보였다. 이어오는 것의 가치는,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삶의 요소들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바쁜 삶을 살다 문득 보게 되는 옛 기억들이야말로 나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존중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또 다른 나의 이야기가 차올라 있을 것이다.
August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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