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거는 창문들 ::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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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December 2016
'말을 거는 창문들'
Collect moments not things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누군가의 창을 올려다보게 된다. 화분을 내어둔 창을 볼 때면 반가워서, 빈티지한 커튼이 나부끼는 창문 너머엔 누가 사는 것일까 궁금해져서, 담쟁이덩굴이 온통 뒤덮인 창을 볼 때면 저런 방에서 아침을 맞는 기분이란 어떨까 상상해보느라. 창문은, 그 안쪽에 사는 주인들의 마음만큼이나 모두 달랐다. 저마다의 얼굴로, 저마다 다른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러니 누군가의 창문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낯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김신지
창문 너머, 누군가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일
창문에는 한 집의 온기와 생기가 함께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하며 누군가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만은,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집 밖에 나와 있는 추운 마음을 녹이려고 첫 번째 성냥을 켜면 따스한 불빛이 일렁이는 난로가, 두 번째 성냥엔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세 번째 성냥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닫힌 창의 커튼 안쪽에 비치는 것만 같은 기분. 외로워지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때 마음은 속수무책이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여기선 집이 너무 멀리 있는 나완 달리, 그들의 집은 그저 창문 안쪽에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저녁이 데워지는 고소한 냄새, 달그락거리며 식기가 부딪치거나 슬리퍼가 거실 바닥을 끄는 생활의 소리, 가끔 창가에 다가와 유리창에 코를 대고 나를 바라보던 맑은 눈의 강아지들. 거기에는 내가 떠나온 생활과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그리워하는 시간, 관계, 기분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더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그럴 땐 그리운 기억으로부터 재빨리 도망쳐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대신 지금 가까이 있는 창문 안쪽을 더 열심히 상상하는 일. 창 안쪽에는 누군가의 온전한 세계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가끔 머리를 질끈 묶은 창의 주인이 테라스에 나와 화분에 물을 주거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기도 했다. 낯선 그 혹은 그녀는 이 도시, 저 창가에서 행복한 아침도 불행한 저녁도 모두 맞이할 것이다. 커튼을 걷는 순간부터 미소를 띠게 되는 아침도 있을 테고, 지친 날의 긴 한숨으로 창문이 흐려지는 저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날엔 저 창을 통해 계절이 바뀌는 기척을, 날씨가 개거나 흐려지는 모습을, 낙엽이 지는 거리의 냄새를 모두 느끼곤 하겠지. 창이 있어 누군가를 궁금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창은 안부를 묻는 데 서툴거나 인색해지는 우리를 대신해, 그 자리에 열려 있는 것도 같았다. 혹은 어디서든 쉬이 외로워지는 우리를 위해 어디서나 비슷하게 이어지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도 했다. 그럴 때 창은 서로를 향해 투명하게 열려 있는 문 같다. 굳이 두드리거나 열지 않아도, 그 앞에 서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꽃을 보며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어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창가를 돌보기도 했다. 자신의 창가에 작은 정원을, 소박한 꽃밭을 만드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어느 집엔 빨간 꽃송이들이 열매처럼 가득 매달려 있기도 했고, 어떤 창가엔 키 큰 식물들이 커다란 잎을 아래로 드리워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사는 도시에선 ‘새시’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고 투덜거리던 친구가 생각났다. 모두가 비슷한 창을 가지고 산다는 게 풍경을 얼마나 단조롭게 만들고 있었는지, 그런 곳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창가에 꽃을 가꾸는 이들은 자신만의 창을 가꾸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 이 마을에서 내가 갖게 된 한 뼘 창에 시간을 쏟고 마음을 담아, 밖에서 바라보면 단번에 구분할 수 있는 ‘내 방’을 만든다. 창은 밖을 향해 열려 있기에 그것은 혼자만의 취미로 그치지 않고 지나는 이들이 올려다보거나 미소 짓고 가게 되는 풍경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창을 가꾸는 마음엔 무언가 더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의 일상이 시들지 않도록 돌보는 바지런함이나 내 집을 선물 상자처럼 예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그 ‘무언가’를 짐작하게 된 건 시 속에서였다. “내가 반 웃고/당신이 반 웃고.” 장석남 시인은 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하는데, 그 시를 다 읽지도 못하고 거기서 멈춰버렸던 기억이 난다. 웃음을, 그것도 내 몫의 웃음을 반으로 나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까닭이다. 자신의 창을 환한 꽃들로, 푸른 잎의 식물들로 꾸미는 이들의 마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꽃을 가꾸며 내가 반 웃고, 그 꽃을 보며 당신이 또 반 웃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함께 떠오르는 이야기, 평생토록 캔버스에 수많은 창문 그림을 그렸던 마티스는 일흔일곱의 나이에 창문 그 자체가 예술인 작품을 만든다. 남프랑스 방스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로사리오 성당. 그곳에 마티스 최후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있다. 노랑과 파랑, 초록만을 써서 표현했다는 성서 속 ‘생명의 나무’는 햇살이 창문에 비쳐들 때면 실내를 마치 천국의 정원처럼 보이게 한다고 했다. 창문을 캔버스 삼았던 마티스가 기다린 일은 단 하나. 빛이 그리게 하는 것. 신의 손길인 ‘빛’이 그린 그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일흔일곱의 화가.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를 전하며 내가 반 웃고, 그 이야기를 듣는 당신이 반 웃고.
여기 있는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줄 창문들
학교에 다닐 땐 너나없이 창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 제비뽑기 같은 것으로 자리를 바꿀 때면 다들 비슷한 마음이 되었을 정도로. 네모난 교실에 갇혀 지루한 수업 시간을 견디면서도, 창 너머를 바라볼 때면 더 먼 곳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버스나 기차를 타면―그러니까 심지어 어딘가로 가면서도 더 멀리 가고 싶어서―창가에 앉고 싶어 한다. 창을 통해 풍경을 본다는 건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창 가까이에 앉으려 할까. 집에서도 그렇다. 몹시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진 늘 창을 열어두고 지낸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요즘은 매일 집으로 돌아오면, 오늘이 마지막일까 하는 마음으로 창을 열어두게 된다. 책상 위 스탠드만 켠 채로 어두운 빛 속에 앉아 창밖을 내다볼 때면 낮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작은 골목 끝, 마주 보고 선 건물의 창들이 꼭 가운데를 꾹꾹 눌러 펼쳐 놓은 책 같다. 밤이면 저 환한 책을 통해 누군가의 조용한 하루를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웃집에서 가꾸는 옥상 텃밭, 건물들 사이로 삐쭉 고개를 내민 나무 몇 그루, 그리고 멀리, 아주 멀리까지도 점점이 이어져 있는 불빛들. 누군가가 저 어둠 속에 앉아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들. 열린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끝없이 열려있다. 우리는 안다. 창문을 넘어, 저 들판을 건너, 언덕이나 산을 넘어 낯선 마을을 가로질러, 생각이 저 혼자 걸어가고 걸어가다 보면 마침내 바다에 닿으리란 걸. 생각이 여행하는 끝은 늘 바다라는 걸. 그리고 그 바다까지 건너면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미지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창밖을 보는 순간, 우리는 가장 멀리까지 간다. 마테오 페리콜리가 쓴 《작가의 창》이란 책에는 50명의 작가가 바라본 창과 그 너머의 풍경이 담겨있다. 마테오는 세계 각지에 별처럼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글을 쓰는 공간의 창문과 창밖 풍경을 기록했다. 책에 담겨 있는 것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 더 좋다. 드로잉으로만 완성한 그림은 상상하게 한다. 이 그림이 움직이는 진짜 풍경을. 창밖의 강이 푸른빛을 띠며 흐르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그 위로 밤이 찾아오고 아침이 찾아올 그런 풍경을. 그래선지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창문을 하나하나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그 창이 있는 누군가의 방으로, 그 방이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간 기분도 든다. 그런 경험을 여행이 아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여행이란, 바깥을 향해 열린 창가에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December 2016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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