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날 동안의 뮤지엄 :: THERE
AROUND, January 2017
글·사진 이진주
열여섯 날 동안의 뮤지엄
뜨거운 햇살이 한없이 쏟아지던 지난 칠월의 첫날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Lombardy 주에 위치한 술차노Sulzano 마을에서 맞았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의 작품 플로팅 피어스The Floating Piers가 인접한 이세오 호수Lake Iseo 위에 설치되었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떠나온 터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술 작품, 호수, 도시, 사람, 일상의 삶이 포개져 어우러진 풍경을 마주했다. 글·사진 이진주
호수 위에 펼쳐진 길
스위스의 예술가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자우그Rémy Zaugg는 그의 저서 《Das Kunstmuseum, das ich mir erträume》에서 예술 작품은 고귀한 신전이나 평화로운 공원 같은,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닌 일상 생활의 한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 빵집이나 정육점 등이 있을 법한 골목에 자리 잡을 때 사람들은 예술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만 개의 고밀도 폴리에틸렌 정육면체를 물 위에 띄우고 그 위를 노란 천으로 덮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플로팅 피어스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1970년부터 그들은 작품을 설치할 장소를 신중히 물색해왔다. 긴 시간 동안 그들이 한결같이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장소의 공공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플로팅 피어스가 개별적인 예술인 아닌 모든 사람이 언제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여느 도시의 거리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오랜 준비 기간 끝에 마침내 2016년 6월에 이세오 호수 위에 노란빛 길이 열렸을 때 화려한 오프닝이나 입장권이 전혀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익숙한 삶의 풍경
햇빛에 반사되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가 하면 물에 젖어 진한 오렌지 색을 발하기도 하는, 오묘하게 변하는 길이 드디어 바로 내 눈앞에서 시작되었다. 술차노Sulzano 마을과 산 파올로San Paolo 섬, 그리고 몬테 이솔라Monte Isola를 연결하는 이 길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메워져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모두 저마다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어떤 이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어떤 이는 길가에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윗옷을 훌렁 벗고 드러누워 내리쬐는 햇볕을 만끽했다. 몇몇은 잰걸음으로 나아가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고, 물길이 신기하여 신이 난 아이들은 장난치다가도 안전보트나 보안 경찰이 길에 가까이 다가오면 어느새 그 주위로 하나둘 몰려들었다. 조금이나마 그늘이 지는 곳에는 인파와 더위에 지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피자 조각을 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사람들의 에너지가 플로팅 피어스에 생생함을 더하고 있었다. 정말 여느 도시 속 분주하고 활기찬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좋아하는 거장의 작품과 사소하고도 익숙한 삶의 조합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달뜬 기분이 들었다. 나도 기꺼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길을 걸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길 표면의 물컹한 촉감, 햇빛에 뜨끈하게 데워진 길의 열기가 발바닥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고래의 등을 걷는 느낌’이라는 작가의 표현이 떠올랐다.
열여섯 날이 지나면
이세오 호수 위에 노란빛의 길이 처음 열린 것은 우리가 마을을 방문하기 15일 전이었다. 꼭 열여섯 날을 보내고 철거된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그 갈무리를 함께 보낸 셈이다. 뜨거운 햇볕과 훅훅한 열기 사이로 뺨에 와 닿는 호수 바람, 길 너머로 보이는 진녹색 빛의 산과 마을의 구도심, 맑고 투명한 호수에서 평화로이 물장구질하는 오리 두 마리 같은 것들. 이 길 위에서 마주한 탐스러운 여름 풍경은 내일이 되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흠뻑 누렸던 그 길의 한 조각을 이미 나눠 가졌기에.
January 2017
THEREZINE
  • 여행에미치고싶다 20170207141603744

    어라운드의 감성 콘텐츠는 정말 명불허전이네요. 여행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잘 보고 갑니다!
    답글 1   답글쓰기
    • 데얼 20170207141930310

      앞으로도 여러 제휴사들의 좋은 콘텐츠 많이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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