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겨울 오후 :: THERE
AROUND, February 2017
AROUND
한적한 겨울 오후
한적한 겨울 오후 미술관 옆 어느 곳
어릴 적에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좋아했다. 정작 영화를 본 건, 어른이 되고도 긴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지만 이유 없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미술관 곁의 동물원, 동물원을 끼고 있는 미술관이라니. 어감이나 단어가 주는 색깔이 심상치 않아서, 언젠가 미술관 옆에 있는 어딘가를 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인 내게 갑작스레 주어진 어느 오후, 그간 꽁꽁 미루어둔 숙제를 마침내 마쳤다.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김연경
카페 인 스페이스
으레 전시를 보고 나면 이유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이 묵직하게 솟아오른다.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말들도 아니면서 자꾸만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생각들. 그럴 때는 동요하는 마음을 조용히 잠재워 줄 카페인이 필요하다. 카페라 하면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 사회적·문화적 담론을 자유롭게 나누던 공간이었다. 각기 다른 의견을 하나둘 꺼내면서 사람들은 근황을 나누고 생각을 견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공중으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미술관과 카페가 딱히 동떨어진 성향의 공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라리오뮤지엄’ 내에 위치한 ‘카페 인 스페이스’는 사실 흐르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멈춰있는 공간에 가깝다. 지나가다 잠시 들르거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한숨 돌리는 공간보다는, 전시회와 창덕궁 사이에서 목적을 가진 방문객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널찍한 통유리로 둘러싸인 이곳은 사계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창밖으로 담쟁이는 빨간 벽돌 건물을 휘감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사옥이었던 이곳은 그의 제자 장세양 건축가에 의해 재설계되었다. 창덕궁을 안마당처럼 여겼던 그를 생각하며 어느 공간에서도 창덕궁이 잘 보이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볕이며 빗줄기며, 땅거미 지는 하늘의 색감이 그대로 카페 안으로 녹아든다. 카페 인 스페이스는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으며 1층은 한옥 카페, 3층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4층은 일식집 그리고 5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다. 갖가지 일이 있었지만,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다.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괴로운 일도 있으리라. 그래도 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준다. 반드시. - 요시모토 바나나, 《무지개》 중에서 A.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T. 02 747 8102
미술관 옆집
서촌이라면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떠오른다. 걸어가다 밟았을 때 흔적도 없이 부숴지는 몹시 마른 낙엽. 계절과 별개로 이유 없이 내게 서촌의 꼬리표로 붙어있었다. ‘미술관 옆집’은 대림미술관 옆에 자리한 카페이자 콘셉트스토어다. 대림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전시의 여운을 곱씹기 좋은 장소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랜 세월을 보낸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삐거덕 소리 너머에 푸름. 미술관 옆집은 70년대 주택의 호젓한 분위기를 그대로 지키며 리모델링했다. 그래서 그런지 2층으로 올라가는 가을빛 계단이나, 저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창, 하늘을 담은 작은 못, 그리고 식물의 자리까지도 그 집을 꿋꿋이 지켜온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미술관 옆집이라는 이름은 아주 단순하게 지어진 듯하다. 대림미술관 옆에 있는 집이니 말이다. 위치와 거리를 재는 의미에서 옆집이라면, 미술관에서 차마 다 끝맺음하지 못한 생각의 집일지도 모르겠다. 미술관과 옆집은 그런 방식으로 이어져 있다. 어느 날의 오후가 갑작스레 주어졌다면 겨울의 적요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마땅한 것 같다. 말이 없는 날이라면 더욱 서촌에 찾아간다. 그곳엔 자신에게 물음을 주는 집 한 채가 있다. 우리는 시시하고 즐거운 일들을 하기로 했다. 그것들을 계획하면서 너무 신났다. - 황인찬, <채널링> 중에서 A.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2 H. instagram.com/theneighborhood_daelimmuseum T. 070 4400 0434
소소한 풍경
혼자 있는 날이면 밥 먹는 일을 곤혹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 끼니를 거르거나 들고 다니며 허기만 진정시킬 정도의 간식만 챙겨 먹기도 한단다. 하지만 혼자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시간을 보내도 채근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희소식인 셈이다. 부암동에는 환기미술관이 있다. 부암동 특유의 분위기를 누리며 언덕배기를 오르면 숨이 턱 끝까지 찰 즈음에 미술관이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그 뒷길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전원주택처럼 보이는 식당이 하나 나타난다. ‘소소한 풍경’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오밀조밀한 마당이 나오는데, 잔디밭 주변으로 이름도 어려운 식물들이 모여있다. 화분 하나하나마다 깨끗하게 신경 쓴 손들이 스쳐 지나간다. 소소한 풍경은 한정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코스별로 소풍 샐러드, 훈제한방오리구이, 카프레제, 건두부쌈 등 다양한 메뉴들이 나오고 단품으로는 얼큰한 가지찜이 가장 인기가 많다. 원목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따뜻한 무 차가 나온다. 노란 조명과 키가 높은 천장, 유리병과 작은 인형들. 어떤 영화에서 본 적 있는 작은 별장 같은 느낌도 든다. 정갈한 밥상과 함께 눈앞으로 차오르는 시선은 부암동의 여느 소소한 풍경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 올린 풍경에. -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중에서 A.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0길 75 T. 02 395 5035
남산야외식물원
혼자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많은 방법들 중에 걷는 일이란 가장 적극적인 물리적 실천일 것이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으로 뛰어드는 것. 한정된 영역을 넘어서 더 많은 것들과 호흡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신체를 직접 이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젊은 감각을 중시하고 세상을 다각적으로 다채롭게 접근하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상상력과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를 보고 나면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오후를 느낄 차례다. 발걸음을 숲으로 이동시키는 것. ‘남산야외식물원’은 차도를 조금만 따라가면 발길 드문 산책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곳에서 길이 시작된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와 이제는 져버린 개나리와 갈대. 얼굴을 쨍하게 시리도록 만드는 겨울 공기와 달리 풍경은 괜스레 따뜻해 보인다. 어떤 일들에 긍정성과 부정성을 굳이 부여해본다면, 걷는 일은 필히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그랬다. 걷는 것만으로 삶의 결이 달라질 수 있고, 사고의 관점이 바뀌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성격까지 바뀔 수 있다고. 아마 걷는 그 자체보다 걸으며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한 열쇠였을 것이다. 겨울 밖으로 나가 식물은 어떻게 거친 계절을 보내고 있을지, 겨울 볕은 이토록 모순적으로 따스운지 경험할 시간이다. 서둘러 나가야 한다. 우리의 오후가 금방 저물고 만다. 저녁노을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 오늘이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침묵 속에서 깨우쳐 준다. -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중에서 A.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323 O. 매일 00:00~24:00
February 2017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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