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3일 :: THERE
AROUND, April 2017
글·사진 이진주/ 어라운드
가장 아름다운 3일
이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날은 언제일까. 이곳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를 보낸 직후의 첫 번째 월요일과 그로부터 3일을 꼽을 것이다. 계절로 친다면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잦아들고 봄의 따스한 빛이 찾아드는 3월 초 무렵의 사흘이 되겠다. 매년 그 날이 오면 스위스 바젤 시민들이 ‘가장 아름다운 3일Die drey scheenschte Dääg’이라 부를 만큼 사랑해 마지 않는 일흔 두시간의 축제, 바젤 파스나흐트Basler Fasnacht가 시작한다.
글·사진 이진주
월요일 새벽 네 시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겼을까. 밖은 아직 어둑한 데 멀리서 피리 소리가 가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간신히 실눈을 뜨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이불 밖으로 손 하나가 빼꼼 나오더니 힘없이 흔들린다. 혼자 나서라는 손짓이다. 따뜻한 이불 안에서 늑장 부리고 싶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탓에 마지못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바람이 쌀쌀한 3월의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이 시내 중심을 향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올드타운은 이미 인파로 가득하다. 거리 가운데에는 작은 등불이 달린 커다란 가면을 머리에 쓴 채 북을 매고 피리를 손에 든 악단Clique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고 길의 양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구경꾼들이 빼곡하게 서 있어 어느 한 곳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 남편만 빼고 바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온 것이 틀림없다. 인파를 헤쳐 간신히 만난 친구와 함께 길가 한편에 까치발을 하고 섰다.
종이 네 번 울리면
드디어 바젤의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마르틴 교회Martinskirche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종소리가 새벽 네 시를 알리자 마법처럼 일순간 가로등과 상점의 쇼윈도와 간판까지 도시의 모든 조명이 남김없이 꺼졌다. 이토록 새까만 어둠과 적막 속에 둘러싸인 도시의 모습은 아주 낯설고 기묘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에 일제히 악단의 등불이 밝혀지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찰나의 긴장감이 탁 풀리며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졌다. 이렇게 ‘새벽 네 시의 거리 행진’을 일컫는 모르겐슈트라이히Morgenstreich와 함께 바젤의 파스나흐트 축제Basler Fasnacht가 시작된 것이다. 깜깜한 도시에 반짝이는 것은 악단 무리가 머리에 쓴 여러 모양과 크기의 등불뿐이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신이 나서 악단 무리를 따라 골목길을 돌고 또 돌았다.
한 악단이 요란한 연주를 하며 지나갔다 싶으면 다른 악단이 그 뒤를 따라 또 나타났다. 스틱으로 북을 두드리고 피콜로를 불며 같은 리듬을 반복하는 그들의 연주는 소란스럽다 못해 시끄럽기까지 하지만 어째 자꾸 들어도 지겹지가 않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이 으슬으슬해질 때 즈음 골목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이곳 역시 전등 대신 작은 초 하나만을 밝힌 채로 손님을 맞는다. 어둠 속에서 먹을 오늘의 메뉴는 모르겐슈트라이히때에만 판매된다는 밀가루 수프Mehlsuppe, 치즈 파이Käsekuchen, 양파 파이 Zwiebelkuchen로 딱 세 가지다. 굳이 맛을 따져가며 먹을 만큼 훌륭한 음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고로 전통은 지키는 자체로 그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날이 밝아오자 악단도 하나둘 연주를 접고 구경꾼들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가 되면 악단의 본격적인 거리 행진, 코르테주Cortège가 시작할 것이다.
일흔두 시간을 위해
스위스 바젤의 파스나흐트 축제는 유럽의 다른 카니발과 달리 사순절 이후에 시작한다. 재의 수요일을 보낸 이후의 첫 번째 월요일 새벽 4시에 시작해 목요일 새벽 4시에 끝나는 것인데 이 일흔두 시간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열정과 자부심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대단하다. 일 년 중 삼 일을 제외한 362일을 연주 연습과 의상 및 가면 준비를 위해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축제 시작 한 두 달 전부터 축제를 상징하는 과자인 파스나흐트키어흘리Fasnachtskiechli와 배지Blagette가 도심 곳곳에서 판매된다. 배지를 구입하는 것은 축제를 후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여 이 배지를 옷깃에 달고 ‘바기스Waggis!’를 외치면 행렬이 던져주는 미모사 꽃, 오렌지, 사탕, 인형 등 갖은 종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배지를 달지 않은 채로 거리에 나선다면 색종이Konfetti 세례를 온몸에 맞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매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았지만 올해만큼은 나도 배지를 옷깃에 달고 환호하는 사람들 한가운데에 섰다. 알록달록한 색종이 조각으로 뒤범벅이 된 거리 위로 익살스러운 가면과 화려한 원색의 의상을 갖춰 입은 악단이 앞을 지나가면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바기스!’를 외치리라.
코르테쥬의 피콜로와 드럼 소리와 브라스밴드인 구게Gugge악단의 불협화음 연주, 그리고 어른들 못지않게 화려한 복장을 갖춘 아이들의 행렬은 사흘이면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인 나마저도 한껏 취하게 한 그들의 흥과 열정은 일흔두 시간이 지나고 음악이 멈추더라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여운은 우리 집 테이블에 올려질 노오란 미모사 한 다발로 달래기로 한다.
April 2017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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