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이 공존한다는 것 :: THERE
AROUND, 17th Oct 2017
AROUND Magazine
Vol.8
어제와 오늘이 공존한다는 것

건축가 최욱은 “전통문화는 구세대보다 지금의 세대가 더 잘 읽는다”고 했다. 오늘날의 한옥이 오래된 건축방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또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무조건 가벼운 것으로 치부될 이유는 없다. 과거의 것처럼 지금도 충분히 소박하고 때론 화려하니 전통의 깊이를 재는 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전과 현대의 미가 모인 마을을 체험하고자 전주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옥마을의 이면으로, 사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진화하는 한옥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이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으면서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전주시민들이 한옥을 지어 살면서 생긴 곳이다. 100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이 마을은, 북촌이나 안동 한옥마을과는 달리 큰 규모로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주마을의 한옥은 생활형 한옥의 모습과 가깝고, 편리함을 중요시 하는 현대 주거생활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한옥은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으로 양옥과 반대되는 말이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양옥형태이거나 양옥을 흉내 내는 건물들이 많다. 어디든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늘어나다보니 전통을 지키는 일은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한옥이 축소됐던 것도 놀라운 일이 라기보다, 우리가 수긍해야만 했던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요즘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이 주목받는 것도 옛 것의 형태를 이어가되 기능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거듭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의 뜻을 실현한 게 바로 지금의 한옥형태라고 할 수 있다.


녹차 같은 낮, 샴페인 같은 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에 가면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집으로 돌아와 아쉬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는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한곳에서 좀 눅진하게 머무르는 여행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박삼일이라는 나름의 긴 취재일정을 잡았는데, 잠깐 들렸던 서점의 주인언니는 한옥마을에서 이틀이나 볼 게 뭐 있냐며 얕게 타박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줄 알고, 그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곳에 오래 머물며, 성의 없는 옷차림으로 산책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바람이었다. 그렇게 자세히 보니 이곳의 여러 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띈 건 천편일률적인 한옥의 모습이었다. 현대식 한옥의 모습이라기보다, 장사를 하기 위해 큰 창을 내고 가짜 기와를 올려 만든 식당, 카페, 게스트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으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런 것들은 관광객들을 모으는 요소 중 하나였다. 나 또한 그런 것들에 혹한 게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옥마을의 ‘밤’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을에 머물면서 공사가 한창인 한옥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영업을 위한 가게로 바뀌고 있었는데 단지 상업적인 관광지로만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실제로 2011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될 당시 100여 곳에 불과했던 상업시설은 현재 305곳으로, 3년 만에 3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옥을 비추는 노란 불빛이 좋았지만, 이곳에 사는 어떤 주민은 빛을 조금 줄여 깜깜한 밤하늘을 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몇 번씩 마을에 울리는 안내방송으로 여행객들은 편리하겠지만, 어떤 주민에게는 적막한 아침이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옥마을이 생긴 지 백 년이 넘어가는 이 시기에 이제는 마을의 첫발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낮은 마을이 알려준 낮은 마음
사람들은 높은 건물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자꾸 어딘가로 올라서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쳐왔으니까. 그러나 이곳 마을은 여간해서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옥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전주 자체가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 고층빌딩이 아닌, 오목대라는 작은 언덕으로 향했다. 10분도 안 되어 도착한 언덕 정상에서 본 한옥마을의 전경은 예상대로 그리 웅장하지 않았다. 뾰족한 한옥의 정수리들이 빼곡히 보이는 것이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이었다. 언덕에서 내려와 딱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골목 곳곳을 누볐다. 어떤 여행을 하던 명소를 보는 것보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가보는 게 좋았다. 이곳이 더 좋았던 이유는 대문 앞에 있는 식물 때문이었다. 마트에 파는 대파처럼 끈으로 묶여 자라는 꽃도 있었고(아마도 꼿꼿이 자라게 도와주려는 투박한 손길이지 않았을까), 버려진 욕조에서 자라는 선인장도 있었다. 그들의 주인을 보지는 못했지만, 키가 작고 퉁퉁한 몸집의 할머니와 눈이 작고 몸이 마른 꼿꼿한 할아버지가 눈에 그려졌다.

글 이혜인 / 사진 박소연 - AROUND Magazine vol.8
17th Oc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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