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정선 :: THERE
Orang&Orang, June 2017
글·사진 조혜수
바람 따라 정선
위잉위잉
그런 날이 있다. 열심히 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하늘은 무심하리만치 나에게 시련만 주는 것 같은, 모든 절망이 나에게로 오는 것 같은 그런 날 말이다. 슬픔을 공유하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자꾸만 대화는 겉돌고 그렇다고 혼자 슬픈 노래를 들어봐도 마음의 외로움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삶에 위로가 절실한 당신. 그러나 현실에서 어떠한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당신께 하루 동안 다녀온 정선 여행을 공유하려 한다. 옥순봉의 품에 안겨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잠시 지친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곳에서 나 자신도 미처 몰랐던 진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위로를 찾아서
어느덧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오고 있다. 연초의 지키고자 했던 다짐들은 작열하는 태양아래 녹아 내리고 있었다. 의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권태와 무기력함뿐이다. 나 자신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올 한 해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정선’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 한창 다양한 매체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곳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정선 여행은 이렇듯 ‘위로를 찾아서’라는 작은 부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장소를 정한 후에는 지체 없이 바로 여행길에 올랐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길에 걱정과 고민이란 없었다. 정선으로 향하는 길은 그 길조차 꿈만 같았다. 새파란 하늘과 그 위를 수놓은 그림 같은 산 등성이가 눈의 피로를 씻어준다. 새삼 우리나라에 이렇게도 많은 산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선을 향해 달렸다.
정선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선 읍내 시장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는 것이었다. 평소 사먹는 음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이기에, 위로의 여행인 만큼, 우리만의 소울푸드를 만들어 먹기로 계획한 것이다. 현지에서 직접 재료를 공수해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란 얼마나 맛있을까. 된장와인삼겹살과 다슬기비빔국수를 위한 재료를 구입했다.
그림바위마을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차에 담고 든든한 기분 그대로 바람을 따라 달리다가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시동을 멈췄다. 마을 담벼락 곳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바위마을이었다. 이곳은 여느 벽화마을과는 달리 그림뿐만 아니라 콜라주 형태의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평상에 앉아 계신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천천히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담벼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그림들을 모두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선의 자랑 화암8경을 형상화한 벽화들이 있으니 굳이 실제의 8경을 다 둘러보지 않아도 벽화만으로도 충분히 화암8경을 모두 둘러본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
절경
예술의 기운에 흠뻑 젖은 채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대촌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향하는 길은 지상낙원 그 자체였다. 세상의 모든 바람은 다 이곳으로 모이는 듯, 한여름에도 이곳만은 여름을 비껴갈 듯했다. 그렇게 이십여 분을 더 달려 도착한 대촌 마을. 아직 사람들에게는 대촌 마을이라는 지명보다는 삼시세끼 촬영지,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했던 곳으로 통하는 정선의 작은 마을.‘작은 시골 마을이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숨이 멎어버릴 듯한 옥순봉의 절경은 이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했다.
로맨틱, 밀밭, 성공적
개울에 아련하게 놓여진 돌다리를 건너 짧은 계단 하나를 더 올라가면 정자 하나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식을 했던 밀밭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밀은 다 뽑히고 황량한 황토밭이었다. 결혼식 당시의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와 개울이 그때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이 말은 곧 정선을 위한 말이었다. 매체를 통해 비춰진 정선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정선은 수천 배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 날 선선한 날씨에 레일바이크를 타러 구절리역으로 향했다. 레일바이크는 안 쓰는 철로를 개조해 만든 정선의 즐길 거리 중 하나다. 중간에 절대 멈출 수 없다는 말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힘차게 패달을 밟으며 예전 기차가 달리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차를 타고 가면서 느낄 수 없던 풍경과 바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신나게 레일바이크를 한판으로 역동적인 정선을 경험했다면 정적인 정선을 돌아보자.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그곳에서 옛날 양반이 되어 고즈넉한 정선을 즐기는 것도 또 다른 매력.
수고했어, 오늘도
서울로 돌아가는 길. 바람의 소리는 잦아들고 눈 앞에는 우거진 풀숲 대신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숲 속에만 살았었던 때라면 마냥 짜증났을 것 같은 그 풍경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위로를 받고 여유가 생긴 후 바라본 내 삶의 터전은 여전히 팍팍하지만 그래도 살아갈만한 공간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정선이다. 감당하기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고 있는 당신. 잠시만 짐을 내려놓고 정선의 품에서 위로를 받아보는 것이 어떨지.
“수고했어, 오늘도.”
June 2017
THERE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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